북·미 양측 실무진이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까지 막판 협상을 벌였다. 양측은 두 정상 간 합의문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최종 조율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관측된다. 협상단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북 체제안전 보장과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을 어느 수준으로 확정할지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원칙을 다시금 강조하는 등 북한의 태도 전환을 압박하는 모습을 공공연히 내비쳤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는 11일 싱가포르 리츠칼튼 호텔에서 실무협상을 했다. 미국 측에서는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한반도담당관과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북한 측에서는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 대행과 김성혜 노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이 배석했다.
북·미 실무진은 호텔 로비에서 여러 차례 취재진의 질문 공세를 받았지만 매번 굳은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협상단은 오전에 2시간 남짓 접촉한 뒤 헤어져 각자 오찬을 하고 오후에 다시 만나 논의를 이어갔다. 북·미 실무진은 오전 접촉 때는 거의 비슷한 시간에 호텔 로비에 들어섰지만 오후에는 북한이 미국보다 1시간 남짓 늦게 회담장에 도착해 눈길을 끌었다. 양측은 오후 접촉을 2시간30여분 만에 종료한 뒤 심야에 다시 만나 협상을 이어갔다.
양측은 접촉에서 정상회담 발표문에 들어갈 북한 비핵화 문구의 수위, 미국의 대북 체제안전 보장 방안 등 세부사항을 마지막까지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CVID 원칙을 강조하면서 북한 핵무기 해외 반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해체, 주요 핵시설 사찰 등 이번 정상회담에서 결정적인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주장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CVID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는 데도 집중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완전한 비핵화는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내용”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그보다 더 진전된 ‘플러스알파’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장외에서도 북한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오후 싱가포르 현지 기자회견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서 “북한이 CVID를 받아들인다면 전례 없는 수준의 체제안전 보장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 이전에 대북 제재 해제 역시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할 때까지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오전에는 트위터에 “우리는 한반도의 CVID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데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북·미 간 핵심 합의사항은 실무접촉보다는 양측 정상의 직접 담판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경험에 비춰 북·미 회담도 정상 차원에서 많은 것이 결정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내려놓을 핵탄두와 ICBM 등 초기 조치의 규모와 미국이 제공할 경제 제재 완화의 정도는 북·미 정상이 회담에서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