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지식·경험 배우겠다”… 싱가포르 모델 따르나

북·미 정상회담의 양측 수행원들이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로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단독 정상회담 모두발언을 TV로 지켜보고 있다. 왼쪽부터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이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트위터
 
북한 노동신문 12일자에 게재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날 싱가포르 관광지 방문 모습. 사진 14장을 곁들여 김 위원장 동선을 크게 실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 전날인 11일 밤 싱가포르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봤다. 김 위원장의 ‘나이트 투어’를 놓고 이른바 ‘싱가포르 모델’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행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북한 매체는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의 이런 행보를 신속하게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2일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의 사회·경제 발전 실태에 대하여 요해(파악)하시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보며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귀국(싱가포르)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싱가포르항으로 가는 길에 주빌리 다리 위에서 싱가포르의 도시 형성 계획과 두리안 극장(에스플러네이드)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의 경제적 잠재력과 발전상을 잘 알게 됐다”면서 한밤 투어 소감을 밝혔다고 통신은 전했다. 한밤 투어엔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이수용 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이용호 외무상 등 북측 수행원단이 대거 동행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번 투어가 북한의 관광자원 개발과 관련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싱가포르의 경제성장 모델을 도입하려 한다는 관측이다. 싱가포르는 북한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싱가포르는 국부(國父)로 불리는 리콴유가 1965년 초대 총리로 취임한 후 35년간 사실상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현 싱가포르 총리인 리셴룽이 리콴유의 아들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새 전략노선으로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채택한 후 현지지도를 통해 관광자원 개발 등 경제발전에 매진하는 모습을 부각시켰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로 떠나기 전 공개된 마지막 현지지도에서 평양 대동강변에 새로 건립된 평양 대동강수산물식당을 둘러본 뒤 외국 손님들에게도 봉사할 것을 지시했다. 지난달엔 강원도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현장을 시찰했다. 고암·답촌 철로 준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다만 북한은 폐쇄적인 사회 특성과 신성화된 1인 독재체제를 감안할 때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성장 모델을 당장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으로 고속 성장을 달성한 중국이나 미국과의 수교를 지렛대 삼아 경제발전을 꾀했던 베트남 모델을 결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과 베트남 모두 1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시장 개방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북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당 국가체제 복원, 경제특구 지정, 미국과의 관계개선 시도 등 북한의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중국식 개방 정책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는 중국 전용기를 타고 평양을 떠난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를 11일 공개한 데 이어 김 위원장의 한밤 투어 역시 신속하게 보도했다. 북한 매체는 12일 오전 6시쯤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투어를 처음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간 지 5시간40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김 위원장의 최근 두 차례 중국 방문을 모두 귀환 후 보도했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한 매체의 신속 보도는 북한이 북·미 관계 변화에 그만큼 사활을 걸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또한 북한 매체가 이번 회담 성과에 자신이 없다면 이렇게 대대적으로 보도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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