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그는 싱가포르서 ‘北의 발전된 미래’를 봤을까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56층 스카이 파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전경.
 
임세정 기자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담판을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을 것이다. 앞선 두 지도자가 걸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자신의 앞날에 흥분되기도,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고립이 아닌 상생을 택하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뒤 달려온 지난 6개월의 여정. 그 모든 과정이 생생히 떠오르고, 그러면서도 마치 짙은 안갯속을 걷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런 마음으로 싱가포르의 밤길을 걸었을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한 데 대해 전 세계가 “평화에 한 발 더 다가섰다”고 평가한 12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 12시간 전 눈에 담았던 길들을 따라갔다. 그는 지난 사흘간 머물던 세인트 리지스 호텔을 나와 가든스바이더베이로 출발했다.

김 위원장의 첫 번째 관광 장소였던 가든스바이더베이가 있는 마리나만(灣)으로 가는 길, 번화가인 탕린 로드와 그레이브 로드를 지났다. 오피스빌딩과 초고층 고급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김 위원장은 평양과 비교하며 이 길을 달렸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만1766달러(약 6641만5000원)다. 북한은 700달러(약 75만3000원)도 안 된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외톨이였던 세월 동안 싱가포르는 북한을 100배 앞서갔다. 마리나만으로 향하는 고가도로를 달리다보면 왼쪽으로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이, 오른쪽으로 싱가포르항이 나타난다. 싱가포르항 인근은 지금도 개발이 한창이다. 김 위원장은 이곳에서 고국의 미래를 봤을까. 권위주의 통치를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싱가포르를 북한은 ‘닮은꼴’이라고 생각해 왔다. 김 위원장은 모든 것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든스바이더베이에 갔다. 이곳은 마리나만 매립지에 세워진 101만㎡ 크기의 대형 식물원으로 관광명소다. 김 위원장이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과 셀카를 찍은 이곳에서 관광객들은 형형색색의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식물원의 높은 유리천장을 통해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연과 문명이 어우러진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이 김 위원장 눈에도 각인됐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발길을 따라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56층 스카이 파크로 향했다. 스카이 파크는 싱가포르의 전경을 360도로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다.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된 마천루는 발전한 싱가포르의 상징이다. 열대과일 두리안을 닮은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끄는 복합 문화공간 에스플러네이드, 싱가포르의 상징 머라이언 분수가 있는 광장, 대표적 상업지구 CBD, 싱가포르항에 정박해 있는 많은 선박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를 한눈에 담고 에스플러네이드와 머라이언 공원을 잇는 주빌리 다리를 건너며 또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리게 된 것이 누구의 계산이었든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를 통해 개방과 발전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싱가포르에 머물며 받았던 환대가 그날 밤 ‘야간 참관’을 결단한 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결단은 이튿날에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였는지 모른다.

싱가포르=글·사진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