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정상이 서명한 첫 ‘비핵화 문서’ 의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합의한 공동성명은 양국 정상이 서명한 첫 비핵화 문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을 약속하고,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한 대목은 진전이다.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단독·확대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관련 구체적인 논의를 했다는 점은 성과로 평가된다.

다만 공동성명의 내용 자체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북·미가 완전한 비핵화 의미에 합의한 것인지 여전히 불분명하고, 대략적인 시한조차 명시되지 않은 것이 아쉬운 점으로 지목된다. 북핵 문제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미국이 양보했고, 북한이 더 많이 얻어냈다고 총평했다.

전 국립외교원장인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한국전쟁 이후 북·미 정상이 처음 만나 공동성명을 만들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공동성명 내용 자체는 과거 비핵화 합의에 비해 오히려 후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공동성명에 꼭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최소치가 있는데 그것조차 반영이 안 됐다”면서 “가장 중요한 검증에 관한 부분은 아예 빠졌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명문화, 비핵화 타임라인 설정,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조기 반출을 회담 성패를 가를 기준으로 제시해 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회담 전날까지도 CVID 원칙을 강조했지만 결국 합의문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이 100% 양보한 결과로 아주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첫 정상회담에서 큰 그림이 나오지 않은 만큼 내부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며 “두 정상이 공개하지 않은 부속문서가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디테일이 없다”고 했다. 일각에선 공동성명에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가 선후관계 없이 단순 나열돼 있어 향후 우리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번 북·미 간 합의가 13년 전 나온 ‘9·19 공동성명’보다 못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핵 6자회담 관련국 간 포괄적 선언인 9·19 성명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 조치에 복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침공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싱가포르 합의보다 구체적이고 방향성이 있었는데도 이행 조치를 담은 문서(2007년 2·13 합의)가 나오기까지 1년5개월이 걸렸다. 물론 이번 공동성명은 북·미 정상이 직접 사인한 문서라는 점에서 무게감이나 구속력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과거 비핵화 합의와 비교하면 새로운 내용이 없다”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무엇을 약속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도 “정상 간 합의라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이 공동성명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담보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성명 서명식 후 기자회견을 열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확신하고, 이행 프로세스가 곧바로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한 데 대해선 “문서에 담긴 것과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 간에 괴리가 크다”는 말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가 직접 만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첫걸음을 뗐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공동성명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시작점을 만드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양측은 첫 만남에서 상대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기보다 신뢰를 형성하는 데 중점을 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미 정상이 서명한 문서를 통해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을 약속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윤덕민 교수는 “김정은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어필했다”며 “더 이상 미국이 제재 국면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혜 이상헌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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