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못할 일 이뤄졌다”… 감격과 긴장 오간 하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서울 용산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이병주 기자
 
청년들이 서울광장에서 ‘평화의 시대 청년의 시대’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들고 있는 모습. 윤성호 기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시민들은 한반도 평화정착의 이정표가 될 역사적 장면을 기대하며 촉각을 기울였다. 군복 차림의 군인부터 정장을 입은 직장인, 모자를 눌러 쓴 노인까지 모두가 TV와 스마트폰을 지켜보며 정상 간 회담 내용에 주목했다.

오후 두 정상이 서명식장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생중계되자 서울역 대합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나다니던 사람들까지 모여들면서 TV 앞에는 순식간에 150여명이 모였다. 양손을 모은 채 TV를 바라보던 김신영(45·여)씨는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국가 유공자 모자를 쓰고 TV 바로 앞에서 뉴스를 보던 김명길(74)씨도 “죽기 전에 통일이 되길 원했는데 상상도 못할 일이 이뤄졌다”며 감격스러워했다. 6·25전쟁과 월남전을 모두 겪었다는 김씨는 “남북 간, 북·미 간 정상이 악수하는 모습을 보니 ‘북한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외국인들도 북·미 정상의 만남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가족과 휴가차 한국을 찾은 미국인 아담 렉스(45)씨는 “최선의 합의를 이뤄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상회담 후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면에서는 모두가 숨을 죽였다. 대합실 TV 앞에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화면을 응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기자회견을 죽 지켜본 직장인 박준혁(31)씨는 “성공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잘 마무리된 것 같다”며 “이 기조가 유지돼 종전선언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모(58)씨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합의문에 큰 내용이 없는 것 같다”면서도 “앞으로 변화를 향해 가는 시초는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지하1층 시민청에 마련된 TV 앞에도 오전부터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어린 시절 6·25 전쟁을 겪은 황춘식(71)씨는 두 정상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감격에 겨워했다. 황씨는 “(두 정상이)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울 테니 여러 번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씨는 북·미 회담을 두고 “옛날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라며 “이 회담을 계기로 남북 교류도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죽기 전에 금강산 한 번 놀러가고 싶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스마트폰으로 회담 생중계를 시청하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두 정상이 처음 한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오전 10시 사업가 우모(57)씨는 가던 길을 멈추고 서울광장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냈다. 우씨는 “둘이 악수하는 장면이라도 생방송으로 보려고 기다리고 기다렸다”며 “TK(대구·경북)에서 나고 자란 보수지만 회담을 기대하고 있다. 평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과 학생들의 관심도 북·미 정상회담에 쏠렸다. 박모(29)씨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회담 관련 속보를 꼬박꼬박 챙겼다. 대학원생 김모(26·여)씨도 등굣길 버스에서 스마트폰으로 회담을 시청했다. 김씨는 “남북 정상회담부터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뤄진 과정이 너무 놀라워 현실감이 없다”며 웃었다. 취업준비생 진모(26·여)씨는 공부를 하는 중간중간 회담 생중계를 틀었다. 진씨는 “워낙 예측 불가한 인물들이라 그런지 월드컵보다 북·미 정상회담이 더 재밌다”고 했다.

탈북민과 실향민들의 소회는 남달랐다. 두 정상이 악수하는 장면에서는 탄성을 질렀고 회담이 비공개로 진행될 때는 초조해했다. 탈북민 박영철(37)씨는 “이번 회담이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씨는 함경도 무산을 떠나 2001년 한국에 왔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은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라며 “북한이 이 기회를 꼭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4년 탈북한 이광진(30)씨도 “탈북민으로서 통일이 됐을 때 남과 북을 잇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든다”고 밝혔다.

실향민들은 고향 땅을 밟을 날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단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정상회담 시작 전부터 TV 앞을 지킨 실향민 김영숙(85·여)씨는 “1948년에 신의주를 떠나온 뒤 한시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다”며 “이번 회담 덕분에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선 안 된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65) 대표는 “정상회담 자체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며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와 북한의 인권 문제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주언 방극렬 조민아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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