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과 북한의 후속조치가 속도감 있게 진행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과 구두합의의 동시 이행이 첫걸음이다.
일단 북한은 이달 내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하고,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실무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오는 8월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 비핵화 대상과 시한을 논의하기 위한 북·미 고위급 채널은 별도로 가동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제 북한 비핵화 과정을 시작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사실상 즉각적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은 비핵화를 해야 하고 김 위원장도 그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며 “그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고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공동성명에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비핵화 목표를 확실하게 공유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과 선의로 협상을 진행하는 한 한·미 연합 훈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북한도 김 위원장의 후속조치를 공식화했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해 나간다면 그에 상응하여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를 취해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핵·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억류 미국인 송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이은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2∼3주 안에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일 시험장 폐쇄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과 합의했다고 소개한 내용이다.
미사일 시험장 폐쇄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은 6·12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큰 방향만 담고 있는 공동성명의 빈틈을 메워주는 정상 간 약속이다. 따라서 이 조치가 순조롭게 이행되면 비핵화 협상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된다. 북한은 특히 북·미 정상이 ‘단계별 동시 행동 원칙’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이 어느 한쪽의 일방 조치가 아닌 동시 조치에 공감했다는 것은 첫 만남에서 상당한 신뢰를 쌓았다는 의미다. 미국이 요구하는 CVID와 북한이 원하는 CVIG(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안전 보장)는 향후 협상에 달려 있는 셈이다.
비핵화 실무협상은 북·미 고위급 채널로 넘어갔다.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주도하고, 북한은 이용호 외무상이 등판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북·미 정상회담을 막후 조율해 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대신 대미 협상의 공식 창구가 가동되는 것이다. 이 외무상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핵·군축 전문가다. 핵무기 폐기, 신고, 사찰, 검증 등 핵심적이고 까다로운 쟁점 협상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실무협상의 실권을 쥔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14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해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할 예정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후 중국을 방문, 시진핑 국가주석과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