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회담을 지켜본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냉담했다. 얻어낸 것보다 양보가 많았다는 시각이 압도적이다.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행동을 보이지 않았는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한 것에 대해서는 낭패감을 보일 정도다. 전문가들 중 그나마 후한 평가를 내린 사람이 “시작이 반”이라고 한 빅터 차 조지타운대 석좌교수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원장을 지낸 도널드 맨줄로 한미경제연구소장은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는 “실망”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그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범죄자(김정은)를 사면해준 회담”이라며 혹평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걸 말해준다.
◑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석좌교수는 ‘시작이 반’이라는 한국 속담을 인용하며 “전쟁 일보 직전에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끌어낸 성과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차 교수는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5개월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를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북한에 대한 예측 불가능한 외교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인정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을 고립 상황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게 만든 문재인 대통령의 창의적인 ‘올림픽 외교’에,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인 결정에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당시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은 본인보다 배나 나이가 많은 트럼프 대통령을 존중하는 의미로 회담이 열리는 호텔에 일찍 도착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나이 많은 초대자로서 김 위원장을 회담장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에도 좋은 분위기를 조성한 점 등은 정상회담이 신뢰를 쌓는 기회가 되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도 밝혔다. 그는 “두 정상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공동성명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빠진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의 외교적 선택지엔 항상 ‘나쁘거나’ 아니면 ‘더 나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면서 “이제 김 위원장은 완전한 핵 폐기 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하며, 북한이 그렇게 하는 한 국제사회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도널드 맨줄로 미국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에 대해 “두 나라가 과거와 다른 새로운 미래를 향해 걸어가게 됐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핵 폐기 문제에서 북한으로부터 확실한 답변을 듣지 못한 것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짚었다.
맨줄로 소장은 12일(현지시간) KEI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아직 많은 것들이 잘못될 가능성이 존재하고, 갈 길이 멀다”면서도 “협박과 모욕을 주고받아 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미군 전쟁포로와 실종자 문제를 해결하고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는 데에 합의했지만 394개의 단어로 만들어진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기대했던 만큼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맨줄로 소장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과 대북 제재 완화 문제 역시 우려를 낳고 있으며 미국에 북한 도발을 막을 능력이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와 한·미 연합훈련 종료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 점은 중국에 예기치 않은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핵 폐기 문제에 대해서도 “2005년에 있었던 6자회담에서 더 나아간 것이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한 확인을 받으려는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제기했다. 이어 “북한으로부터 완전한 핵 폐기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이 아니라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 것”이라면서 “비핵화가 실제로 이행될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는 12일(현지시간) 북한전문매체 38노스 기고문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실망뿐이었다”고 혹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핵 폐기 로드맵은커녕 진전된 비핵화 약속조차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갈루치 전 특사는 회담의 득실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핵실험장 폐기, 탄도미사일 시험장 폐쇄, 미군 포로 송환 등을 얻어냈다고 지적했다. 그 대신 미국은 국제적으로 소외당하던 북한 지도자와의 회담에 나섰고 대북 제재를 사실상 약화시켰으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약속까지 해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이번 합의 내용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흥분을 내려놓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끈질긴 노력을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루치 전 특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손뼉을 치며 ‘임무 완수’ 선언을 하지 않고 노벨상에 욕심을 내지 않으며, 순진하고 어리석은 대화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 탄도미사일과 미사일 개발 능력을 제거하는 작업을 투명하고도 현실적인 방식으로 실천토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갈루치 전 특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 시사 발언도 비판했다. 그는 “미국은 자기 정원을 돌봐야 한다. 다시 말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미 본토와 동맹국을 방어하고 억지력을 제공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이 의심받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 마이클 그린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아시아담당 선임 부소장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범죄자에게 조건 없는 사면장을 줄 능력이 있음을 보여줬다”고 비꼬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장에 나란히 섬으로써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 인권 침해 등 북한 정권의 국제법 위반을 희석했다는 것이다.
그린 부소장은 “김 위원장이 이번 회담에서 노다지를 캤다”면서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들었다. 우선 북한은 이번 회담으로 체제 인정 효과를 얻어냈다고 지적했다. 그린 부소장은 “북한 지도자들은 미국 대통령을 끌어들여 체제 보장과 핵보유국 인정을 얻어내려고 20년 넘게 노력해 왔다”며 “김 위원장이 이걸 이뤘다”고 했다.
대북 제재 전선 역시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가 지속되는 기간에도 제재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대북 압박을 눈에 띄게 줄이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지를 선언하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김 위원장에게 ‘뜻밖의 보너스’가 됐다고 해석했다. 그린 부소장은 “아시아 배치 미군 철수는 동맹 관계를 흔들어놓을 만한 발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기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린 부소장은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도 회의적으로 봤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설 폐기 등 몇몇 상징적이고 제한적인 조치를 취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것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향한 진정한 움직임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