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의 내 곁에 산책] 생명 위협하는 미세플라스틱

신현림 (시인·사진작가)
 
Apple travel#5, gyeongju namsan @ shin hyunrim 2016


언제 생각해도 아련하고 달콤하다. 밭에서 바로 딴 채소로 반찬을 만들고, 음식쓰레기는 집에서 기른 가축들에게 주었다. 사람의 배설물은 밭에 거름이 되어 뭐 하나 버릴 것 없이 순환되는 천연의 삶. 저녁이면 마당을 쓸고 그날 버릴 쓰레기에는 비닐 따위는 없었다. 성냥불을 붙여 구겨진 신문지가 빨갛게 타오르면 쓰레기를 모아둔 녹슨 양철통에 넣는다. 순간 활활 타오르는 불길. 아른아른 날아가는 연기 속에는 독한 냄새란 없었다. 그저 마른 파줄기나 종이 부스러기였기 때문이다. 비닐 플라스틱이 드물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꽃다발 포장도 흰 종이나 신문지였다. 과일에 생채기가 나도 문제 삼지 않았기에 물건 파는 데 지장이 없었다. 지금 모든 상품마다 비닐로 싸는 세상은 전혀 알지도, 존재하지도 않던 어린 날. 불과 25년 전에 내게도 그런 조화로운 삶이 있었다. 지금에서는 참 믿기 힘든 꿈속의 나날이 되어버렸다.

어머니가 가게 하시며 키운 오리와 돼지들. 간간이 족제비가 드나들며 습격하던 닭장. 잡초도 그냥 내버려둬 허허롭게 바람에 나부끼면 더없이 황홀했다. 저녁 무렵이면 그 어떤 쓸쓸함이 몰려와 가슴 저리기도 했다. 벌레 먹은 온갖 채소와 과일이 자라던 채마밭 또한 얼마나 기이하고 매력적인지.

고향집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날 매혹시킨다. 간간이 떠오르는 옛 이미지는 술처럼 흘러와 나를 취하게 하고, 무수한 상상력을 낳았다. 그곳은 다시 돌아가 쉬고 싶은 곳이자, 언제나 머물고 싶은 영감(靈感)의 자리다. 하지만 그 기억은 꿈만 같다. 담백하고 간편하게 조리한 음식, 돈이 적게 드는 소박한 먹을거리는 자연에 더 가까워 몸을 훨씬 튼튼하게 추슬러준다. 푼돈 아끼며 살더라도 흙과 나무와 꽃을 아끼고 생각하는 삶은 자신의 맑은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가슴은 흙이 있는 자리를 간절히 원하나, 현실은 좁은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환경재앙으로부터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요즘 나를 뒤흔들어 놓은 미세플라스틱 공포. 우리가 굴, 홍합을 통해 매년 1만1000개를 먹는다는 미세플라스틱. 내가 사는 서촌은 뻐꾸기 소리 들리고, 예쁜 꽃이 피고, 수성동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보여도 비닐 포장재의 심각성을 의식하고 고민하는 말을 들어보기 힘들다. 그래서 더 위기를 느끼는 주일이다.

내내 맘에 걸리는 환경문제. 플라스틱 옷에 플라스틱 꽃에, 플라스틱 물고기까지 우리도 플라스틱이 되는 걸까? 이미 우리는 플라스틱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깊은 인간미를 잃은 이들이 늘고 있다. 단 몇 분 기분 좋으라고 우리는 비닐 포장을 한다. 단 몇 분 기분 좋으려고 과대포장을 하고, 백년 천년 녹지 않는 비닐을 남발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비닐 포장재를 안 쓸 수 있을까? 이것도 외모 지상주의 일종. 고뇌 없이 습관화된 삶. 음식을 해먹으려면 꽁꽁 묶인 비닐을 풀면서 어찌 버려야 할지 망설이고 서성이곤 한다.

나는 사우나 가면 대충 비누로 감거나, 남이 쓰다 버린 찌꺼기 세제를 쓴다. 나라도 환경을 지키면 쓰레기가 덜 쌓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지방자치단체 당선자들조차 환경 고뇌, 개념조차 없었다. 선거운동하는 것을 봤을 때도 어떻게 저리도 환경 고뇌가 없을까 질문했다. 기업들도 이익창출 목적만이 아니라 죽고 사는 절박한 문제로 지구적 차원에서 고뇌하고 물건을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에겐 애들이 살 수 있는 땅을 만들어줄 책임이 있다.

초등학생 때 전국적으로 벌어진 고철줍기 운동이 기억난다. 깡통을 분리 배출해도 쓰레기로 나가는 걸 봤다. 안타깝다. 외국에서 고철 수입을 할 게 아니라 고철줍기 운동을 해 환경의식을 드높이고, 자원 확보를 하면 어떨까. 국민 성원을 받는 대통령이 직접 환경문제에 나서 법적규칙을 세세히 내려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절박한 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먹이사슬의 끝인 우리는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있다. 얼마나 끔찍한가. 일상생활에서 지구 살리기 실천 중에 일회용 물건들을 안 쓰고 안 받는 것이 있다. 유기농 세제를 골라 쓰거나 5000원짜리 비누라도 자연제품은 머리칼이 떡지지 않는다. 장바구니 갖고 다니기, 빨대로 음료수 마시지 않기, 플라스틱 수저 안 받기 등이다. 인류의 터전을 지키고 더 낫게 만들려 순수함을 되찾는 일을 고민한다.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이어가기 위한 방법들을, 아주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들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

신현림 (시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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