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아쿠아리움을 찾았습니다. 각양각색의 해양 생물과 진기한 물고기가 얼마나 많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눈길을 사로잡았던 물고기는 눈이 없는 물고기였습니다. 마음이 짠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이리저리 헤엄치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타까웠죠. 불현듯 애가를 중얼거려 봤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가족들의 모습도 못 보니 얼마나 그 마음이 아쉬울까. 하긴 좋지 않은 것들 안 봐도 되니 그건 참 부럽네….’
‘글래스 캣피시’도 잊을 수 없습니다. 글쎄 뼈고 내장이고 훤하게 몸속이 들여다보이는 녀석이었습니다. 방금 전 앞을 보지 못하는 물고기를 보며 느꼈던 슬픔은 사라지고 찬가를 불러봅니다. ‘잘했네. 속을 훤하게 보여주는 용기가 가상하다. 마치 진실과 정직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네. 허물을 감추려고, 또 속아서 속상하고 못 속여서 속상한 우리 인간 자화상이 참으로 부끄럽구나.’
아쿠아리움을 나오면서 스스로 위로의 노래도 불렀습니다. ‘물고기보다 못된 사람들아. 눈 뜨고 못 볼 일은 제발 좀 그만하세. 물고기보다 못난 사람들아. 속 보이게 속이는 짓 이제 좀 그만하세.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 깨끗해도 주님은 언제나 심령을 감찰하시거늘.’(잠 16:2)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