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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러시아] ‘침대 축구’라니요, 이젠 ‘철벽 축구’입니다

이란 테헤란 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16일(한국시간)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이란이 모로코를 1대 0으로 이기자 승리를 자축하며 기뻐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김태현 스포츠레저부 기자


지난 15일 오후(현지시간) 2018 러시아월드컵을 취재 중인 한국 기자들이 묵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크인 호텔. 이란 축구 팬들의 승전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날 이란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모로코와의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상대의 자책골로 1대 0 승리를 거뒀죠. 이란이 월드컵 본선에서 이긴 것은 무려 20년 만이었습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개막전에서 러시아에 0대 5로 대패한 뒤에 나온 아시아 팀의 승리여서 더욱 뜻 깊었습니다.

파크인 호텔에서 만난 카바드라는 이란인 축구 팬은 “이란 축구는 최근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늘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며 “이란 축구는 4년 전보다 더 강해졌다. 이번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이란은 4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극단적인 수비 축구로 세계 축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줬습니다. 올해 이란은 한층 진화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이란 축구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침대축구’입니다. 하지만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2011년 4월 지휘봉을 잡은 이후 이란 축구는 환골탈태했습니다.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선 6승4무로 한국(4승3무3패)을 제치고 A조 1위로 본선에 오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란 축구는 침대축구에서 늪축구로, 이제 철벽축구로 한 단계 더 진화했습니다.

사실 수비에 치중한 이란의 축구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케이로스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89분 동안 수비를 한다 하더라도 그게 뭐가 잘못됐는가. 1분의 시간이 주어지고 상대가 기회를 허용한다면 오직 승리만을 생각하고 뛰면 된다.”

이란 대표팀은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미국의 나이키가 자국 정부의 제재를 이유로 이란 대표팀에 축구화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고, 또 석연찮은 이유로 그리스, 코소보와의 평가전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이란이 어려운 환경에서 헝그리 정신으로 똘똘 뭉쳐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최고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부진했던 한국 축구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김태현 스포츠레저부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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