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저를 보고 경계했지만, 귀환할 때는 다음에 평양에서 만나 평양냉면을 함께 먹자고 했습니다.”
싱가포르의 유력 방송사 채널뉴스아시아(CNA)는 16일 북·미 정상회담 기간 중 경호 업무와 관련해 통역을 했던 싱가포르 경찰 출신 김주형(25)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김씨는 북한 대표단과 싱가포르 경찰 사이에서 경호 관련 통역을 맡았다. 그는 CNA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접한 북한 인사들이 처음에는 한국말을 잘하는 것을 보고 경계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평양냉면을 같이 먹자”는 말도 스스럼없이 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렸을 때 싱가포르에서 거주했다. 성인 남성이 병역 의무를 지니는 싱가포르에서 김씨는 해안경찰로 복무했다. 싱가포르 정부가 예비군 임무의 일환으로 북·미 정상회담 기간 중 통역을 요청하자 그는 고민에 빠졌다. 통역 업무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라”는 부모의 조언에 따라 통역을 맡기로 결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표단 일행이 호텔 등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것도 임무 중 하나였다. 그는 “어렸을 때 싱가포르로 왔기 때문에 한국말을 매우 잘하는 것은 아니다”며 “북한말의 억양과 일부 단어들이 매우 생소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북한 인사들이 처음에는 싱가포르 경찰복을 입은 김씨가 한국말을 했을 때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고 한다. 북한 인사들은 김씨에게 “한국말을 매우 잘한다”고 했고, 김씨는 “내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만 답했다.
북한 인사들은 자신들의 규칙대로 움직였고, 싱가포르 경찰들과 대화를 잘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경호 업무가 차질 없이 진행되면서 북한 인사들의 태도도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김씨는 “북한 인사들이 ‘다음에는 평양에서 만납시다’라고 했을 때 나와 싱가포르 경찰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을 통해 북한 사람들은 호전적이며 융통성이 없다는 인식을 가졌는데, 이번에 그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