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레알마드리드)와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31·FC 바르셀로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계’라는 평가를 받는 현존 최고의 축구선수들이다. 늘 서로 비교될 수밖에 없는 숙명의 라이벌 관계인 두 선수의 희비가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극명하게 갈렸다.
호날두는 16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무적함대’ 스페인에 맞서 혼자 세 골을 몰아넣으며 조국을 패배 위기에서 구했다. 월드컵 사상 최고령자의 해트트릭이다. 경기는 3대 3 무승부로 끝났고 포르투갈은 B조에서 가장 강한 팀인 스페인과 승점 1을 나눠 가졌다. 포르투갈은 비교적 약체인 모로코, 이란과 남은 경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치르게 됐다.
호날두는 전반 3분 페널티 지역 왼쪽 측면을 돌파한 뒤 상대 팀 반칙을 끌어내 페널티킥을 유도했고, 직접 키커로 나서 선제골을 넣었다. 1대 1이 된 전반 44분에는 페널티 지역 아크서클 앞에서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슛을 차 상대 골망을 다시 한 번 흔들었다.
포르투갈이 2대 3으로 뒤진 채 경기 종료가 임박했던 후반 43분에는 기적 같은 장면이 나왔다. 호날두가 찬 프리킥이 뛰어 오른 상대 수비수 머리를 스치듯이 지나가며 골문 구석에 꽂혔다. 세 골 모두 팀의 패싱 플레이가 아니라 호날두 스스로 만든 골이었다. 호날두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나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팀을 위해 희생했다”며 “믿을 수 없는 경기였고, 조국을 위해 뛰고 이기려고 노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반면 메시는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그는 이날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D조 첫 경기에서 월드컵 무대를 처음 밟은 아이슬란드 선수들을 상대로 맥을 못췄다. D조에서 전력이 가장 강한 아르헨티나는 부담감을 안고 남은 크로아티아, 나이지리아전을 준비하게 됐다.
메시는 “이번 월드컵이 처음으로 월드컵 트로피를 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대표팀 은퇴 선언까지 번복하며 배수의 진을 치고 출전한 대회다.
하지만 메시는 어깨 위에 짊어진 무거운 중압감을 떨쳐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골대 앞을 가득 메운 아이슬란드의 수비벽을 뚫지 못했다. 장신 수비수들에게 번번이 막히며 공간 창출에 실패했고, 무력하게 공을 뺏기는 모습도 보였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후반 17분이었다. 1-1 상황에서 아르헨티나는 천금의 페널티킥을 얻었고 메시가 키커로 나섰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골키퍼가 메시의 슛을 쳐냈다. 메시는 총 11번이나 슈팅을 했지만 한 골도 터뜨리지 못했다. 메시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매우 고통스럽다. 내가 페널티킥에 성공했다면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었다”며 “우리가 승점 3을 얻지 못한 건 내 책임”이라고 자책했다. 다만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다음 경기(크로아티아전)를 잘 준비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