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덩어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 점막 아래에서 멀리 퍼져 나가
내시경 검사로도 잘 발견되지 않아
진단 되었을 땐 이미 3·4기 까지 진행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많이 발생
40세 전이라도 소화불량 등 계속되고
가족력 있으면 2년마다 내시경 검사를
어린이집 교사인 A(28·여)씨는 지난해 12월 갑작스럽게 위암 3기 선고를 받았다. 3년 전 배가 아파 찾은 동네병원에서 단순 십이지장궤양 진단을 받았고 쭉 그런 줄로만 알았다. 당시 위암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헬리코박터파일로리균 감염이 확인돼 예방 차원에서 제균 치료도 받았다. 이후 궤양 치료와 함께 1년에 한번씩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암을 의심할 만한 병변은 발견되지 않았다. 가족 중에 위암 환자도 없었다. A씨에게 위암 진단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는 “나이든 사람들 얘기인 줄 알았던 위암이 20대인 나에게 찾아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또 “해마다 빼먹지 않고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도 암을 찾아내지 못한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국립암센터 위암센터 엄방울 외과 전문의는 “A씨의 경우 젊은층에서 많이 생기는 ‘미만(?漫)형’ 위암으로 확인됐다”면서 “50대 이후에 흔한 ‘장(腸)형’ 위암에 비해 발견이 쉽지 않고 진행(전이) 속도가 매우 빠른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암이 주변 림프절까지 퍼져 위의 60%가량을 잘라냈다. 재발을 막기 위해 3주에 한 번씩 항암치료도 받고 있다.
위암은 50대 이상에서 빈발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40대 이하, 특히 20·30대의 경우 대부분 속쓰림이나 복통 증상이 있어도 ‘그냥 위염이겠거니’ 가볍게 넘어가기 십상이다. 암을 떠올리기엔 아직 젊고 건강하다고 과신한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A씨 같은 젊은층에서 성질이 좋지 않은 독한 유형의 위암이 오히려 더 많이 발생하고 조기 발견도 어려워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젊은층 위암 줄지 않아
18일 국립암센터 연구진이 국가암등록자료를 토대로 조사해 최근 국제학술지 ‘암 연구와 치료(Cancer Research & Treatment)’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국내 신규 위암 환자 수는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5년 새로 발생한 위암 환자는 2만9207명으로 2011년(3만1937명)보다 9.3% 줄었다. 다만 전체 암 발생 순위에선 그간 발생률이 가장 높았던 갑상샘암이 크게 줄면서 2위였던 위암이 다시 1위로 올라섰다.
위암의 전반적 감소 추세는 위내시경 검진의 보편화가 한몫했다. 위암 전 단계(용종)에서 일찍 발견해 치료하는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위생 수준 향상으로 위암의 주요 위험 요인인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줬다.
전국 12개 대학병원이 2015년 1월∼2016년 12월 진행한 대규모 연구에 의하면 국내 16세 이상 일반인의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은 51.0%로 조사됐다. 1998년(66.9%) 2005년(59.6%) 2011년(54.4%)에 이어 꾸준한 감소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60∼70대에서 위암 발생이 두드러지게 줄어들었을 뿐 50대 이하에서는 암 등록 통계가 시작된 99년 이래 큰 변화가 없었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신철민 교수는 “특히 20·30대의 위암은 10여년간 줄어들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고령층에서 위암 발생이 줄면서 전체 위암에서 젊은 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약간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국내 위암 발생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70·80대로 인구 10만명 당 300명에 육박한다. 이어 60대 50대 40대 30대 순으로 발생하고 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과 맵고 짠 음식을 선호하는 식습관, 가공육 섭취를 통한 발암 물질(아질산염) 노출, 흡연 등 위암의 여러 위험은 나이들수록 많아지기 때문이다. 성별로는 50대 이상에서 남자가 배 이상 많이 발생하고 40대 이하의 경우 남녀가 비슷하거나 여성이 조금 더 많다.
고약한 ‘미만형 위암’ 많아
눈여겨봐야 할 점은 연령대에 따라 다르게 발생하는 위암의 유형이다. 젊은층에서 많이 생기는 유형은 악성도가 높기 때문에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절대 경계를 풀어선 안 된다.
국제 통용 분류법에 의하면 위암은 장형과 미만형, 혼합형으로 나뉜다. 장형은 암이 주로 덩어리를 만들고 몰려서 자라는 특징이 있다. 암이 위 점막 표면에 튀어나와 자라는 형태를 보이기 때문에 내시경 검사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위 점막 아래와 근육층을 뚫고 바깥으로 나가는 속도는 상당히 느리다. 국내 50대 이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유형이다. 조기 발견해 치료하면 병의 경과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반면 미만형은 암이 덩어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위 점막 아래에서 퍼져 나간다. 처음부터 작은 암세포들이 수없이 깔려 있어 바깥으로 쉽게 뚫고 나간다.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이항락 교수는 “장형의 경우 미세암이 있어도 암 덩어리 근처에 존재하고 그 바깥은 비교적 깨끗하다. 반면 미만형은 발견될 때 벌써 미세암이 멀리 퍼져 나간 경우가 많다. 진단될 때 이미 3, 4기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한 대학병원 조사결과 20·30대 위암의 60% 가까이가 이런 고약한 위암으로 나타났다.
미만형 위암은 점막으로 덮여있어 내시경 검사에서 놓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엄 전문의는 “내시경으로 아무리 위 표면을 관찰해도 특별한 변화가 없으므로 위암을 찾아낼 수 없고 따라서 진단이 늦어진다”고 말했다. 암이 점막으로 덮여있으면 환자가 느끼는 증상 또한 경미해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미만형인 경우 암이 공격적이고 전이가 빠르며 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그만큼 사망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 통계청의 2015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30대의 암 사망률 1위가 위암(인구 10만명 당 2.7명)이었다. 20대(0.5명)는 3위, 40대(6.7명)는 3위로 보고됐다.
미만형 위암은 특히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2005∼2012년 위암 수술 환자 4722명을 분석한 결과 미만형 위암 비율은 여성이 48%로 남성(32.6%)보다 훨씬 높았다. 반대로 장형 위암은 남성(59.5%)이 여성(39.9%)보다 많았다. 실제 배우 고(故) 장진영(당시 37세)씨와 가수 유채영(당시 40세)씨 등 유명인이 같은 유형의 위암으로 투병하다 짧은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위암은 처음 제안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보어만 타입(Borrmann type)’ 4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위 표면에 암이 생기는 1형은 장형, 2형은 혼합형에 가깝다. 위 점막 아래를 파고드는 3, 4형은 미만형에 해당돼 진단이 늦다. 최근 젊은 여성에게 발생이 증가하는 유형이다. 악성도 높은 이런 유형이 많은 이유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여성 호르몬과 관련 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조기 사망을 초래하는 유전자 변이와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오기도 했다.
엄 전문의는 “특히 보어만 4형 위암은 점막 표면이 아니라 위벽 중간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기 때문에 위 표면에는 뚜렷한 변화가 없어 조직 검사를 하더라도 진단되지 못할 때가 있다”면서 “진단 안 된 상태로 추적관찰만 하다 나중에 3, 4기로 진행돼 오는 환자도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2014년 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30대 위암 환자의 원격 전이(4기) 비율은 20.2%인 반면 40세 이상에서는 11.2%였다. 젊은층에서 진단이 늦어지는 만큼 멀리 떨어진 장기로 암이 퍼지는 확률 또한 높음을 보여준다. 반면 비교적 빨리 발견된 국한(1, 2기) 병기의 경우 30대가 55.5%, 40세 이상은 66.3%로 나타났다.
위험요인 있다면 40세 전 검사 필요
장형 위암의 경우 여러 위험 요인에 노출돼 암이 되기까지 10∼20년에 걸쳐 ‘만성 위염→위축성 위염→장상피화생→이형성증→위암 선종(용종)’ 등 여러 단계를 거친다.
신 교수는 “하지만 젊은층 위암은 이런 다단계 발암 과정과 무관하게 급격히 발생하기도 한다”면서 “내시경 검사를 받았어도 1년 사이 위암 판정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미만형 위암은 빠르면 6개월 사이에 암 진단을 받기도 한다.
미만형이든 장형이든 치료법은 별 차이 없다. 3기까진 수술과 항암치료를 병행하고 4기의 경우 항암치료만 한다. 방사선 치료는 하지 않는다. 엄 전문의는 “진단이 어려워서 그렇지 미만형도 일찍 찾아내기만 하면 치료 경과가 좋다”고 말했다.
현재 2년마다 실시하는 무료 국가 암검진은 40세 이상으로 한정돼 있는 만큼, 20·30대가 건강검진에 소홀하기 쉽다. 40세 전이라도 소화불량 속쓰림 복통 등 증상이 계속 나타나고 직계 가족 가운데 위암 환자가 있다면 2년 마다 한 번씩 꼭 경험 많은 내시경 전문의에게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신 교수는 아울러 “모든 헬리코박터균 감염자의 제균 필요성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위암 가족력이 있다면 헬리코박터균 치료가 권고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