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한 반란’은 한낱 꿈이었던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신태용 감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태극전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한국이 ‘바이킹 군단’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서 패했다. 그것도 유효 슈팅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졸전이었다. 16강으로 가는 길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신 감독의 어설픈 트릭이 부른 참사였다.
한국은 18일(한국시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페널티킥골을 허용해 0대 1로 패했다. 한국은 독일을 꺾은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와 24일 0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스웨덴의 장단점을 훤히 꿰뚫고 있다고 착각한 신 감독이 준비한 트릭은 196㎝의 장신 공격수 김신욱이었다. 신 감독은 예상을 깨고 4-3-3 전술을 꺼내들었고, 최전방 한가운데에 김신욱을 배치했다. 그리고 손흥민과 황희찬을 좌우에 포진시켰다.
신 감독은 장신 공격수 김신욱이 제공권을 책임지고, 손흥민과 황희찬이 돌파로 스웨덴의 수비를 무너뜨리면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신욱은 키가 큰 스웨덴 선수들을 상대로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못했다. 에이스 손흥민은 집중 마크를 당해 고립되기 일쑤였다. 한국이 공격에 나설 때면 공의 흐름이 뻑뻑했다. 패스의 질이 좋지 않았던 탓이었다. 포백 수비라인은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해 여러 차례 실점 위기를 자초했다.
양팀의 플레이 스타일은 달랐다. 장신 군단 스웨덴은 한국 문전으로 높은 크로스를 날리며 골을 노렸다. 반면 발이 빠른 한국은 잔뜩 웅크렸다가 역습으로 상대 골문을 두드렸다. 한국은 전반 중반 이후 경기 주도권을 내줬다. 전반 21분엔 아찔한 상황을 맞았다. 문전 혼전 상황에서 마르쿠스 베리에게 왼발 슈팅을 허용한 것이다. 골키퍼 조현우의 선방이 없었더라면 실점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전반 27분 변수가 발생했다. 박주호가 패스를 받기 위해 뛰어올랐다가 착지 과정에서 다리를 다쳐 들것에 실려나간 것이다. 김민우가 교체 투입됐다. 이후에도 한국은 잇따라 수비가 뚫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한국은 후반 18분 선제골을 허용했다. 김민우가 한국의 페널티 지역에서 상대 선수에게 태클을 가해 넘어뜨렸다. 경기는 속행됐지만 곧 비디오 판독이 실시됐고, 판정이 번복돼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키커로 나선 안드레아스 그란크비스트가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신 감독은 후반 27분 구자철을 빼고 이승우를 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하지만 만회골을 뽑아내는 데 실패했다.
신 감독은 성격이 화통하다. 뭐든 숨기는 법이 없다. 하지만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달라졌다. 그는 인터뷰나 기자회견 때 “공개할 수 없다”, “그건 비밀이다”는 말을 자주 했다. 평가전에선 선수들에게 가짜 등번호를 달게 했다. 전술까지 숨겼다. 지난 7일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손흥민을 빼고 황희찬과 김신욱을 투톱으로 선발 출전시킨 데 대해 “트릭이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조롱거리가 됐다. 하지만 신 감독은 조롱을 받더라도 한국보다 한 수 위인 스웨덴을 꺾기 위해선 트릭이 필요하다고 고집했다.
결국 신 감독의 트릭은 ‘허풍’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직 한국의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다. 망친 1차전은 빨리 잊어버리고 최선을 다해 멕시코전을 준비하는 것이 상책이다.
니즈니노브고로드=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