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년 뒤의 일본. 가상 도시 ‘메가사키’의 시장 고바야시는 고양이를 추앙하고 개를 혐오한다. 전염성 강한 ‘개 독감’이 퍼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모든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추방시킨다. 양아들 아타리의 충직한 경호견 스파츠가 그 첫 번째 대상이 된다.
쫓겨난 개들은 굶주림과 외로움에 시달린다. 구더기가 득실대는 음식물 쓰레기를 서로 차지하려 물어뜯어가며 싸운다. 희망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생겨난다. 목에 걸린 이름표만이 그들도 한때 애지중지 주인의 사랑을 받던 존재들이었음을 증명해줄 뿐이다.
그때 한 소년이 홀로 경비행기를 타고 섬에 들어온다. 스파츠를 찾으러 온 아타리다. 무리 지어 몰려다니던 애완견 출신 렉스와 보스 킹 듀크는 아타리를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선다. 비협조적이었던 떠돌이 개 치프도 차츰 경계심을 풀고 모험에 합류한다.
영화 ‘개들의 섬’은 얼핏 한 편의 우화처럼 보인다. 귀여운 개들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삭막하고 암울하다.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인 개가 인간세계에서 배척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작은 용기와 행동이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뭉클한 감동이 전해진다.
‘미장센의 대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판타스틱 Mr. 폭스’(2009)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퍼펫이라 불리는 인형들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각각의 움직임을 달리해 촬영한 프레임들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과 같은 화려한 색감 대신 차분한 무채색 계열을 썼다.
일본을 배경으로 삼은 건 구로사와 아키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헌사의 의미라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벚꽃, 스모, 전통 가면극 등 일본색 짙은 설정들은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의식만큼은 선명하다. 쓰레기 섬이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영화에서 개들은 영어를, 사람들은 모국어를 사용한다. 현실에서 그렇듯 인간과 동물은 언어가 아닌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일본어는 자막도 제공되지 않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은 자연스럽게 개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극 중 상황은 극우로 치닫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과 유럽 사회에 대한 풍자로 읽히기도 한다. 고립된 개들은 현실의 유색인종이나 소수자, 혹은 갈 곳 잃은 난민으로 치환된다. 영화에서 개들은 우리와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는, 우리의 이웃이다. 제68회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21일 개봉. 101분. 12세가.
권남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