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이지 못했고, 얼어서 엉덩이를 뒤로만 빼는 모습이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지난 18일(한국시간) 스웨덴에 맞서던 한국 축구 대표팀의 모습을 이같이 촌평했다. 수비 조직력을 둘러싸고 쏟아지던 우려를 감안하면 1실점은 나름대로 성공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모두가 뒤로 물러난 채 유효슈팅을 하지 않고서는 경기를 이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전술적인 실패는 기성용과 손흥민의 데이터에서도 발견된다.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동료들에게 75차례 공을 건넸던 기성용은 스웨덴전에서 45개의 패스만을 성공시켰다. 스웨덴전에서의 키 패스(동료의 슈팅 시도로 이어지는 마지막 패스)는 단 1개였다. 전후반 내내 쉬지 않고 달렸는데도 앞쪽으로 침투 패스를 찌를 상황 자체가 많지 않았다.
기성용 스스로가 사실상 ‘포어 리베로’ 역할로 수비진에 가까이 위치했고, 패스를 받을 공격수들도 다들 내려와 상대 선수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줄어든 패스에도 불구하고 후스코어드닷컴 등 축구 통계 사이트들은 기성용에게 한국 내 최고 평점을 부여했다. 이 역시 공격보다는 수비 가담의 공로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에이스 손흥민은 스웨덴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면서도 단 1개의 슈팅을 기록하지 못했다.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는 후반전 도중 투입돼 2차례 골문을 겨냥했던 그였다. 최전방이 아닌 왼쪽 측면을 맡은 그는 TV 화면에 잘 드러나지도 않았다. 가끔은 드리블 돌파로 찬스를 제공하려 했지만 그런 때에는 동료들이 같이 달려주질 못했다.
결과적으로 스웨덴전은 손흥민을 윙백처럼 활용한 경기가 됐다. 상대 골문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위협적인 손흥민의 장점이 발휘되지 못하자, 거스 히딩크 감독 등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이를 안타까워했다. 손흥민은 경기 후 “한국 대표팀과 토트넘(소속팀)이 다르냐”는 외신의 질문을 받고 “물론 조금 다르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내가 패스를 해야 할 때도 있고, 토트넘보다 플레이하기 더 어렵다”고 말했다.
축구 전문가들은 멕시코를 상대로 ‘통쾌한 반란’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장 잘 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상대에 맞추기보다 핵심 전력인 기성용과 손흥민의 능력을 극대화하라는 지적이기도 하다. 어차피 멕시코는 선수 기용의 폭이 넓고 전술 운용이 다양한 팀이다. 독일과의 경기와 딴판으로 한국을 상대로는 화끈한 공격의 팀이 될 것이란 관측도 지배적이다.
신태용호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역습 패턴은 결국 기성용의 발끝에서 출발한 공을 손흥민이 집어넣는 그림이다. 멕시코를 상대했던 독일이 그랬듯, 공격에 열을 올리는 멕시코의 뒷공간이 허술해질 가능성에 한국은 기대를 건다. 기성용에게는 상대 수비 진영의 뒷공간에 정확하게 볼을 떨어뜨릴 수 있는 킥 능력이, 손흥민에게는 창의적인 움직임으로 골을 터뜨릴 수 있는 마무리 능력이 있다.
앞서 실패한 ‘스리톱’은 ‘투톱’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간 평가전을 보면 손흥민은 황희찬과 투톱으로 호흡을 맞췄을 때 보다 가벼운 몸놀림을 보였다. 한국의 최근 승리 경기인 ‘가상의 멕시코’ 온두라스전도 손흥민 황희찬 조합이었다. 손흥민은 “남은 경기들에서 한국이 나아진 모습을 보이겠느냐”는 외신 질문에 “그저 잘 방어한 뒤 역습을 잘해야 골이 들어갈 것”이라고 답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조커’ 이승우 활용하라
1986 멕시코월드컵 A조 조별리그 한국과 불가리아의 2차전. 당시 21세의 신예 스트라이커 김종부가 후반 시작과 함께 투입됐다. 김종부는 26분 후 천금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1대 1로 비긴 한국은 역대 최초의 월드컵 승점(1점)을 따냈다. 이후 1998 프랑스월드컵의 이동국, 2002 한·일월드컵의 이천수, 2006 독일월드컵의 박주영, 2010 남아공월드컵의 김보경 등은 어린 나이에 월드컵 무대에서 조커로 맹활약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선 이승우(20·베로나)가 ‘신예 조커’의 계보를 잇고 있다.
‘신태용호’의 막내 이승우는 지난 18일(한국시간) 열린 스웨덴과의 대회 F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한국이 0-1로 뒤져 있던 후반 27분 교체 투입됐다. 자신의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 나선 이승우는 활발한 움직임으로 한국의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조커로서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승우는 20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베이스캠프 훈련에 나서기 전 가진 인터뷰에서 “꿈의 무대에 데뷔해 개인적으로 기뻤지만 팀이 져서 아쉬움과 실망이 더 크다”며 당시의 심정을 피력했다. 이어 “어려서부터 월드컵을 봤는데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3승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아직 1패밖에 하지 않았고, 2경기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우는 오는 24일 멕시코전에 출전할 경우 어떤 각오로 뛰겠느냐는 질문엔 “개인적인 공격포인트는 중요하지 않다. 선수들이 하나로 뭉치고, 한 발 더 뛰면서 서로 도와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또 “멕시코전은 쉽지 않은 경기가 되겠지만 우리 선수들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훈련하고 있다”며 “멕시코 선수들은 투지가 강해 기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고 전의를 다졌다.
이승우는 13세이던 2011년 스페인 명문구단 FC 바르셀로나의 유소년팀에 입단해 탄탄하게 기본기를 닦았다. 지난해 8월에는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 A의 베로나에 입단해 프로 경력을 쌓고 있다. 어려서부터 한국과 다른 분위기에서 축구를 한 이승우는 당돌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지난 U-20 월드컵에선 머리카락을 검붉은 색으로 염색한 뒤 머리 양 옆에 글자를 새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톡톡 튀는 이승우가 엄격한 규율로 통제되는 대표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승우는 코칭스태프와 형들의 사랑을 받으며 대표팀에 녹아들었다. 이승우는 대표팀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 이승우는 형들에게 먼저 다가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대표팀이 분위기가 처져 있으면 재롱을 떨기도 한다고 한다.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스웨덴전에서 이승우가 투입된 이후 한국은 후반 막판 수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투입됐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멕시코전에선 이승우를 선발로 기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대 최고 스타플레이어였던 펠레(브라질)와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프란츠 베켄바우어(독일) 등도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이승우에게도 월드컵은 라이징 스타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