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보이콧을 주도했던 토비 월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가 보이콧 철회 두 달 만에 한국을 찾았다. 카이스트가 여는 인공지능 윤리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는 21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자율살상무기(autonomous weapons)를 개발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한국이 될 것”이라며 “한국도 적극적으로 논의에 나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월시 교수는 지난 4월 해외 학자 56명과 함께 카이스트 연구협력 거부를 선언했다. 카이스트가 국방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를 설립하면서 ‘킬러로봇’ 개발 논란에 휘말린 게 발단이 됐다. 학자들은 “통제력이 결여된 자율무기를 포함한 인간 존엄성에 어긋나는 연구 활동은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카이스트의 답변을 받은 후에야 보이콧을 철회했다.
월시 교수가 자율살상무기에 반대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책임의 문제다. 누구를 어떻게 죽일지를 기계가 결정하면 나중에 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피해 규모도 질적으로 다르다. 월시 교수는 “자율살상무기의 잠재성은 어마어마하다”며 “원한다면 얼굴인식 기능을 이용해 어린이만 무차별 살해할 수도 있고,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숨긴 채 테러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 큰 피해를 낳기 전에 국제법으로 개발을 금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월시 교수는 “자율살상무기가 개발되면 한반도 정세는 더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과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새로운 군비경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자율살상무기 금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월시 교수는 “지난해 유엔에 로봇무기 개발 금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낼 때 가장 먼저 참여한 국가가 파키스탄이었다”며 “무기가 개발되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큰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월시 교수는 카이스트 논란이 한국과 국제사회에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세계 주요 대학 중 자율살상무기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힌 건 카이스트가 처음”이라며 “카이스트가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면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월시 교수의 남은 목표 중 하나는 한국에서 더 많은 연구기관과 학자들이 자율살상무기 개발 금지 운동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는 “한국 도시의 다양한 풍경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다고 생각해 왔다”라며 “이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