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종료 휘슬이 울리자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는 심판은 물론 동료와도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채 가장 먼저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아르헨티나를 잡았다고 발을 구르며 열광하는 크로아티아 관중들을 한 차례 흘끗 쳐다봤을 뿐이었다.
메시는 22일(한국시간) 2018 러시아월드컵 D조 조별리그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그의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단 1개의 슈팅만 시도했다. 그나마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메시의 침묵 속에서 아르헨티나는 크로아티아에 0대 3으로 완패했다. 미국 ESPN은 “메시는 크로아티아전 이후 망가진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슈팅 숫자에서 엿볼 수 있듯 메시는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경기 내내 볼을 터치한 횟수는 49차례에 머물렀다. 드리블 돌파를 5차례 선보이고 2차례의 키 패스(동료의 슈팅 시도로 이어지는 마지막 패스)를 해냈지만 공격 포인트로 연결되지 않았다. 후스코어드닷컴은 메시에게 7.12점의 평점을 매겼다. 끔찍한 수비 실수들을 저지른 아르헨티나 팀 내에서는 최고 평점이었지만, ‘축구의 신’이라는 거창한 수식어에는 한참 못 미쳤다.
A매치에서만 66골을 기록해온 메시는 이번 월드컵에서 유독 심각한 골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2경기에서 12차례 슈팅을 날렸는데 아직 득점이 없다. 무득점인 선수들 중 메시보다 많은 슈팅을 시도한 이는 없다.
메시의 이런 부진은 동료 탓이라는 해석이 많다. 팀원들이 정확한 패스로 세계 최고의 공격수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패장이 된 호르헤 삼파올리 아르헨티나 감독은 다른 팀원들을 폄하하면서까지 메시의 자존심을 세우려 했다. 삼파올리 감독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현실적 능력이 메시의 빛을 흐리게 한다”고 말했다.
반면 메시 스스로의 책임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왕성하게 경기장을 뛰어다니지 못해 슈팅 공간을 못 만들었다는 얘기다. 메시는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7.6㎞를 달렸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평균 9.6㎞를 움직였다.
‘맞수’와의 비교는 메시를 더욱 괴롭게 한다. 메시와 발롱도르(FIFA 올해의 선수상)를 번갈아 수상해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는 4골로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기력에 실망한 메시의 팬들은 “얼른 대표팀을 은퇴하라”는 목소리마저 내고 있다. 메시는 2016년 코파아메리카 결승에서 패한 뒤 대표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지만, 팬과 대통령의 만류로 이번 월드컵에 나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