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오는 8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에 합의했지만 합의 수준은 최근 일련의 남북 및 한반도 화해 분위기를 감안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과 박용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측 대표단은 22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9시간 동안 협상을 벌였다. 양측은 오는 8월 20일부터 일주일간 북한 금강산에서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고, 상봉 인원은 남북 양측 각각 100명으로 하는 데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예년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비슷한 기간과 규모”라고 전했다. 2015년 10월 이후 첫 이산가족 상봉 행사인 데다 지난달 말 기준 이산가족 생존자가 5만6890명임을 감안하면 만족스럽지는 못한 결과다.
또 그동안 우리 정부가 추진 방침을 밝혀왔던 이산가족 전면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고향 방문 등도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우리 대표단은 이런 인도주의적 문제의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한 지속적인 협의를 북측에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종결회의 모두발언에서 “8·15 이산가족 상봉 이외 여러 가지 인도주의 문제를 많이 제기했다”며 “(북측이) 앞으로 계속 협의하기로 결의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낮은 수준의 합의가 도출된 데는 남북 간 민감한 주제들이 거론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2016년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일하다 탈북한 북한 여종업원 12명의 송환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와 관련해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앞서 북한은 지난 5월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 명의로 탈북 여종업원의 송환을 공식 요구한 바 있다. 박 회장은 ‘남측 억류자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북측에 언급했느냐’는 질문에도 즉답을 피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측이 여종업원 송환 문제를 제기했겠지만 우리가 이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주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이상가족 상봉 행사를 일회성 행사로만 합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는 남북 인도주의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수준의 논의가 진행됐지만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이슈를 의식해 ‘속도조절’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오늘 합의된 내용을 포함해 많은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며 “여러 가지 다른 문제를 고려하면서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날 회담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박 회장은 오전 전체회의 모두발언에서 자신의 방북 경험을 소개하며 “내가 88년 6월 10일 우리 조국(금강산)에 처음 발을 디딜 때 생각도 난다. 회담이 잘될 것”이라고 했다. 1차 수석대표 접촉 때도 박 회장은 박 부위원장에게 “손잡고 갈까요”라고 제안, 남북 수석대표가 손을 잡고 회의장에 입장하기도 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남북 적십자회담 공동보도문
1. 남과 북은 8·15를 계기로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키로 했다. ①상봉 행사는 8월 20∼26일 진행하며 대상은 각각 100명으로 하고, 거동이 불편한 상봉자에 한해 1명의 가족을 동반하기로 했다. ②생사확인의뢰서는 7월 3일까지, 회보서는 7월 25일까지, 최종명단은 8월 4일 교환하기로 했다. ③남측은 행사·통신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선발대를 상봉 시작 5일 전 금강산에 파견해 사전 준비를 하기로 했다. ④기타 제기되는 문제들은 문서교환 방식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2. 남과 북은 상봉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상봉 장소인 금강산 면회소를 보수하기로 하고 남측은 현지 점검을 위해 시설 점검단을 6월 27일부터 파견하기로 했다.
3. 남과 북은 앞으로 합의되는 시기에 적십자회담과 실무접촉을 갖고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문제들을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