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을밀대와 필동면옥은 서울 최악의 평양냉면 전문점”이라고. 그런데 이 말에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을밀대와 필동면옥은 수많은 ‘평냉(평양냉면) 마니아’의 성지다. 특히 매년 눅진한 더위가 시작될 때면 이들 식당 주변은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그런데 저자는 무슨 이유에서 두 식당을 “최악”으로 규정했을까.
책에 실린 평가를 간추리면 이렇다. 우선 을밀대의 냉면은 “예외적인 맛”이다. 문제는 이게 좋은 뜻이 아니라는 거다. “전통의 노포라는 곳에서 기대할 법하지 않은, 인스턴트식품의 맛이다. 단순한 화학조미료 수준이 아닌, 대량생산 식품에서나 날 법한 감칠맛과 설탕 이외의 당을 쓴 단맛이 지배한다. …혀에 남는 건 인스턴트 가루나 농축액을 탄 맛이다.”
필동면옥을 향한 야멸찬 평가도 인상적이다. 이 가게를 다룬 챕터 말미에 등장하는 ‘한 줄 평’을 모아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면은 질기고, 국물은 “평양냉면의 악몽”이라고 할 수 있다. 접객이나 식당 환경은 “아수라장”이고, 고명과 반찬은 “체면치레” 수준이다.
이렇듯 도발적인 메시지가 간단없이 이어지는 책은 음식평론가 이용재(43·사진)씨가 최근 펴낸 ‘냉면의 품격’(반비)이다. 세계 최초 평양냉면 비평서라고 불러도 무방한 신간이다. 책에는 ‘평냉 마니아’의 사랑을 받는 수도권 평양냉면 전문점 31곳에 대한 비평이 실려 있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난 이씨는 “과거에 내가 쓴 음식비평을 보고 (비판적인 내용 탓에) 고소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번 책을 내면서도 부담감이 없진 않았다”며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냉면 비평서를 출간한 건 평양냉면이 한식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독특하다고 판단해서다. 한식은 가정식과 외식의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냉면은 예외다. 인스턴트 냉면이 있긴 하지만 집에서 면과 육수를 만들어 먹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씨는 “가격에 대한 논쟁을 유발하는 등 ‘비평적 잠재성’이 큰 음식이 평양냉면”이라고 설명했다.
음식비평은 조금만 허술해도 비판받기 십상이다. “평론가의 입맛대로 평가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 쉽다. 이번 책에 담긴 가차 없는 비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씨를 상대로 “당신의 취향에만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런 얘길 하고 싶어요. 뭔가를 평가할 때 저의 ‘취향’은 거의 개입되지 않아요. 완성도만을 잣대로 음식과 식당을 비평해왔어요. 평론가는 담론의 장(場)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에게 냉면이라는 음식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이씨는 한양대 건축학과를 나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09년 귀국했고, 각종 매체에 음식 관련 글을 쓰면서 필명을 날렸다. ‘외식의 품격’(오브제) ‘한식의 품격’(반비) 같은 저서는 논란의 음식비평서였다.
그의 글은 과학적인 이론 위에 맛깔나는 표현과 뾰족한 비판이 포개지는 구성을 띠고 있다. 수많은 맛집 블로그에서는 접하기 힘든 분석과 해법을 확인할 수 있다.
‘냉면의 품격’에서도 이씨의 이런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고춧가루를 뿌린 냉면(냉면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의정부 계열 냉면’으로 통한다)에 대해선 “감정적인 맛의 요소로 존중할 수는 있지만 (고춧가루는) 객관적인 맛에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많은 식당에서 허투루 여기는 식기에 관한 내용도 눈길을 끈다. 이씨는 손님들이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집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공동 수저통은 위생상 문제가 있으니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냉면집에서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주발도 마뜩잖아 한다.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특유의 비린내가 평양냉면 국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언젠가부터 국내에선 평양냉면이 미식가의 척도로 자리잡았다. 책에 담긴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미식가들 사이에서 가히 “컬트적 인기”를 끄는 음식이 평양냉면이다.
이씨는 “평양냉면이 ‘미식가의 리트머스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평양냉면의 “컬트적 인기”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나 역시도 왜 평양냉면이 그런 위치에 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의아한 현상”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