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2018 RUSSIA

[굿모닝 러시아] ‘월드컵 축제’를 즐기지 못한 태극전사들

김태현 기자


“미안합니다.”, “아쉽습니다.” 태극전사들이 입에 달고 다닌 말이다. 모두 중압감의 포로가 돼 있었다. 월드컵은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출전하길 원하는 지구촌 최대의 축구 축제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은 성적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2018 러시아월드컵을 즐기지 못했다. 즐기기는커녕 자책감과 비난 때문에 괴로워했다. 왜 태극전사들은 월드컵을 즐기지 못했을까.

월드컵을 즐기지 못한 대표적인 선수는 김민우다. 그는 스웨덴과의 대회 F조 조별리그 1차전 중 페널티지역에서 상대 선수에게 태클을 시도하다 페널티킥을 내줬다. 한국이 0대 1로 패한 뒤 그는 “판단 미스로 안 좋은 결과가 일어나 팀에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엔 진한 자책감이 묻어 있었다.

장현수 역시 팬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했다. 멕시코전에서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선수의 크로스를 막으려다 뜻하지 않게 핸드볼 파울을 범한 그는 죄인처럼 몰래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손흥민은 멕시코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만회골을 터뜨린 뒤 “해결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골을 넣고도 대국민 사과를 하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나서 부담감 없이 경기를 즐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또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국민들이 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과 성적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태극전사들과 국민들이 경기를 즐길 줄 알아야 한국 축구는 강해진다.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대한축구협회의 안일한 태도다. 축구협회는 브라질월드컵 때 심리상담사를 파견했지만 러시아월드컵엔 파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러시아월드컵에서 김민우와 장현수 등 심리치료가 필요한 선수들은 도움을 받지 못했다. 또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뒤 백서를 발간하며 “4년 후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허언이 됐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26일(현지시간) 카잔 아레나 미디어센터에서 “심리상담사 건으로 알 수 있듯 축구협회는 선수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 행정’에 급급한 것 같다. 이러니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꼬집었다.

카잔=김태현 스포츠레저부 기자 taehyu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