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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권아 백패스 줄여야 돼”… 투혼의 수비수 김영권을 만든 이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수비수 김영권이 27일(한국시간) 열린 독일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경기 후반 추가시간 왼발로 결승골을 넣은 뒤 양팔을 벌려 환호하고 있다. 김영권의 지도자들은 “영권이는 골을 넣을 줄 아는 수비수였다”고 입을 모은다. AP뉴시스


김영권의 독일전 결승골이 터진 28일 새벽 정진혁 전주대 축구부 감독은 TV 앞에서 펄쩍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부심이 오프사이드를 선언하고 비디오판독(VAR)이 이뤄지는 중에도 그는 “오프사이드가 될 수 없다”며 골을 확신했다. 정 감독은 대학 시절 김영권을 지도했고 결혼식 주례를 맡아준 은사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의 영권이는 플레이 하나하나에 갈급함이 있었다”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제자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영권이 국가를 대표하는 중앙수비수로 자라기까지는 정 감독과 같은 스승들의 남모를 노력이 있었다. 김영권은 재능이 출중했지만 학창시절 축구를 그만둘 뻔한 위기가 있었다. 중학생 시절 부모님의 사업 문제로 가정형편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강원길 전주공고 축구부 감독은 이때 김영권의 부모님에게 “회비 등 부수적인 건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며 김영권을 맡겨 달라고 부탁했다. 강 감독은 “당시에는 영권이를 좋은 선수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고 말했다. 결국 김영권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강 감독에게 계속 축구를 배웠다. 돈을 벌기 위해 타지로 떠난 부모님과는 한동안 떨어져 살았다.

강 감독은 김영권의 전지훈련 비용, 축구부 회비를 몰래 대신 냈다. 그는 “학생들도 회비를 내야 훈련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전지훈련 때가 되면 영권이가 침울해 보였다”고 말했다. 몰래 마음을 써주면서도, 축구의 기본기를 가르칠 때에는 혹독했다. 강 감독은 “영리하고 여유 있게 플레이하는 영권이는 헤딩 상황에서 조금 물러나 발로 공을 받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러지 말고 상대와 붙으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김영권은 호남대 체육특기생으로 진학하려다 잦은 부상 등의 문제로 틀어졌고, 정 감독이 있는 전주대로 가게 됐다. 정 감독은 김영권에게 체력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일부러 고된 훈련을 시켰다. 입학도 하지 않은 김영권을 제주도 동계훈련에 데려가 40여일간 매일 모래밭을 달리게 하고 역기를 들게 했다.

정 감독은 “‘도태돼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유독 영권이에게만 가혹하게 대했다”고 했다. 김영권은 소리를 질러가며 동계훈련 전 과정을 소화했다. 정 감독은 “모든 것을 이겨내는 모습에 ‘잘 선택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권의 대학 입학 등록금을 3차례 대신 내 줬다.

풋살 국가대표팀 감독을 겸하던 정 감독은 김영권을 풋살 아시아챔피언십 대표팀에 발탁해 수비수를 등지고 하는 플레이, 발바닥으로 볼을 컨트롤하는 방법 등을 가르쳤다. 그 결과 김영권은 위험 지역에서 개인기로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뛰어난 수비수가 됐다. 대학 재학 중 일본 J리그 도쿄FC에 진출한 김영권은 계약금을 받고 정 감독을 찾아와 등록금을 갚았다.

정 감독은 대표팀이 전주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마지막 국내 평가전을 치르던 지난 1일 경기장을 찾아 김영권을 만났다. 그는 이때 김영권이 앞선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잘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질책했다고 한다.

앞선의 손흥민 황희찬에게 빨리 공을 차 줘야 하는데 괜히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해 실점 위기를 자초한다는 지적이었다. 김영권은 “미드필더들에게 숨 고를 시간을 주려는 생각이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고 한다. 정 감독은 “원래 영권이와 대화할 때에는 좋은 이야기보다 쓴소리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김영권이 2018 러시아월드컵 대표팀 최종 명단에 들었을 때 축하 전화를 했다. 김영권은 “무조건 죽을 각오로 하고 오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월드컵 무대에서 김영권은 몸을 내던지는 수비로 ‘자동문’이라던 오명을 씻었고, 역사적인 골까지 기록했다. 강 감독은 “영권이가 눈물지을 때 나도 뭉클했다”며 “묵묵히 제 자리에서 김영권처럼 노력해온 선수들을 격려해 달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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