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에서 2패 끝에 세계 최강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 유종의 미를 거뒀다. 하지만 두 대회 연속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등 결과적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특히 독일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스피드, 활동력이라는 한국 특유의 축구 색깔을 살리지 못하면서 무기력하게 패했다. 비록 선수들의 간절함과 정신력 덕분에 1승을 거뒀지만 대표팀의 발전 측면에서는 4년 전보다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한국 축구가 본연의 특징을 도외시한 채 어설픈 전술 습득과 유럽식 기술축구 모방에 그치면 이 같은 시행착오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통적으로 한국 축구는 유럽과 남미의 강점으로 불린 제공권·압박, 개인기 등에서 우위를 점한 적이 없었다. 이를 처음으로 극복한 것은 4강 신화를 쓴 2002 한·일월드컵 때였다. 강인한 체력을 앞세워 공을 뺏고, 순간적인 역습을 통해 상대를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축구를 본격 정립한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한국 선수들은 투지있게 상대를 쫓고, 스트라이커와 양쪽 윙어들의 왕성한 활동량과 순간 스피드를 활용했다. 다만 당시에는 이런 특징들이 세련되지 못하고 따로 놀아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면 한·일월드컵에서는 고강도 체력 훈련과 조직력 강화를 통해 한국식 스타일의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다.
한국 축구는 이런 특징을 바탕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까지 세 대회 연속 승점 4점 이상을 따내는 등 성과를 보였지만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태륭 SPOTV 해설위원은 29일 “2010년대 들어 기존 한국식 스타일을 등한시하고 네덜란드나 스페인 등 유럽 축구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려다 우리만의 색깔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물론 한국 축구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독일전에서 남보다 한발 더 뛰며 몸을 사리지 않는 김영권과 윤영선의 활약은 눈에 띄었다. 부상으로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권창훈, 이근호처럼 활동량이 풍부한 자원들도 있다. 선수들의 투지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투지를 활용한 축구를 펴지 못했던 것이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한국 축구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많은 활동량과 강한 압박인데 이런 것들이 예전보다 느슨해졌다”며 “결국 우리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을 쓰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강조했다.
자기들만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내세운 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월드컵에서 선전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란은 2011년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 부임 이후 오랜 기간 수비 축구 스타일을 다듬었고 이번 월드컵에서 전매특허같은 ‘늪축구’를 선보였다. 유럽 출신의 케이로스 감독이 이란 선수들의 체격과 전술적 능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이란식 축구를 만든 것이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이 현실적으로 유럽 등 강팀에 기술적 측면에서 뒤지고, 공격 가능한 자원이 없다는 것을 냉정히 인정하고 팀에 맞는 전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일본 역시 전통적으로 잘했던 미드필더 라인의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를 살리면서 역대 월드컵 3번째로 16강 고지를 밟았다. 니시로 아키라 감독은 지난 4월 뒤늦게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으나 일본의 장점을 살리는 데 집중했고 일본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베테랑들을 팀에 새로 합류시켰다.
김태륭 해설위원은 “일본은 패스, 이란은 피지컬이라는 자신들만의 색깔을 부각시키며 월드컵에 나섰다”며 “스웨덴전에서 보듯 수비 위주 축구나 스페인식의 뷰티풀 사커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선수들만의 장점을 살리는 전술 극대화 없이 손흥민 등 특정 선수의 기량에만 의존하는 축구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힘줘 말했다.
박구인 방극렬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