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모기와 멧돼지



등산로 바로 옆에 살다 보니 사슴벌레, 무당벌레, 다람쥐, 백로 등을 자주 만난다. 이런 반가운 존재들을 만나는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고 멧돼지를 마주치는 공포스러운 경험도 있었다. 내가 지능이 있어봤자 저놈과 일대일로 붙으면 지겠구나 싶어 조심스레 도망쳤다. 멧돼지는 그나마 멀리서 알아챌 수 있는데 끊임없이 찾아오는 모기는 잘 안 보여서 무섭다. 방충망을 달고 문틈을 막아도 커다란 산모기는 꼭 온다. 물론 산 옆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연간 2억명에게 말라리아를 감염시킬 뿐만 아니라 귀 옆에 와서 ‘왱∼왱∼’거리며 잠을 깨우고 통증보다 더 고통스러운 가려움을 선사한다.

모기는 중생대와 신생대를 나누는 멸종에서도 살아남은 생물로 인간보다 역사가 길다. 모기는 오로지 자기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만 활동하므로 생태계 다른 종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없으면 인간도 멸종한다고 했는데, 모기는 그만큼 이롭지 않은 것 같다. 최근까지도 모기를 박멸하는 것이 생태계에 유리하냐, 더 나쁘냐는 끊임없는 논쟁거리다. 박멸의 당위성과 별개로 모기라는 종만 완전히 없애기가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사람 마음도 생태계처럼 복잡해서 뇌 속에는 많은 생각과 느낌이 존재한다. 불안도 모기처럼 인류보다 오래됐다. 멧돼지 같은 큰 동물이 농작물을 망쳐놓듯 크고 분명한 트라우마가 마음을 해치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을 더 자주 해치는 것은 작고 확실하며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는 모기와 같은 불안이다. 모기의 존재를 모른 채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물렸을 때보다 모기가 ‘왱’거리며 내 피를 빨 기회를 보고 있는 것을 알아챘을 때 예기불안은 더 커진다. 멧돼지처럼 목숨을 위협하는 거대한 불안보단 일상이 깨지거나, 사회에서 뒤처지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모기와 같은 불안에 잠 못 드는 사람이 더 많다. 일본뇌염 예방접종이나 모기향을 피우는 등의 최선은 다하겠지만 그냥 내 피 빨아먹어라, 넌 나를 없애지는 못한다는 태도로 모기를 대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주원(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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