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하 할아버지는 1926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다. 굴곡진 우리네 현대사만큼이나 그의 삶은 기구했다. 군에 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할아버지는 수차례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했다. 휴전 소식을 접한 건 그가 경남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감돼 있을 때였다. 영영 고향에 갈 수 없는 실향민 신세가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이후 전북 익산에 둥지를 튼 뒤 가족을 꾸렸다.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을 건사했다.
‘너희는 꼭 서로 만났으면 좋갔다’는 할아버지가 셋째 딸 현미씨와 공동으로 펴낸 책이다. 부녀는 2년 전에도 ‘쑥갓 꽃을 그렸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전작에는 할아버지가 그린 자두와 꽃과 물고기 그림이 담겼는데, 이번 작품엔 가족들의 인물화가 실려 있다.
저 그림은 할아버지가 아들을 그린 것이다. 그림 옆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나는 뭐 딸 아들 별 차이를 두지 않지만 야가 유씨 집안 이어 갈 자식인 것은 틀림없지? …나처럼 머리가 벗어졌는데 이 그림에서는 감쪽같이 안 보인다! 어려서는 솔찮이 귀여웠는데.”
책장을 넘기면 할아버지가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그린 가족들의 모습이 차례로 등장한다. 그러다가 말미엔 이런 글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가 남쪽에서 꾸린 가족들이 그가 북에 두고 온 가족들과 언젠가 만나길 기원하는 메시지다. “내가 살아서는 고향에 못 가겠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해도 떨어지기만 하고. 이담에 너희가 찾았으면 좋갔다. 너희는 꼭 서로 만났으면 좋갔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