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이 본격적인 관세부과 전쟁을 코앞에 두고 서로 견제사격을 하는 등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행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치안 조심’을 당부하며 관광 제한 조치 가능성을 시사했고, 유럽연합(EU)에 대미 공동전선 구축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인 중국 차이나모바일의 미국 시장 진출을 좌절시켰다.
미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지난달 28일 미국 관광에 나서는 유커들에게 “미국의 치안이 불안하다. 총격 강도 절도 등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고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을 게재했다고 4일 홍콩 명보가 보도했다. 대사관 측은 미국 여행 시 주변의 의심스러운 사람을 경계하고, 밤에 홀로 외출하는 것을 삼가라고 당부했다. 또 위험한 상황 발생 시 침착하게 911 전화로 경찰에 신고하되 중국어로 말해야 중국어 안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이 지난해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에 대해 한류 금지와 단체관광 중단 등으로 보복했던 한한령(限韓令)처럼 미국행 관광 등을 제한하는 한미령(限美令) 가능성을 예고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중국은 캐나다 멕시코 영국 일본에 이어 5번째로 미국행 관광객이 많다. 2016년에는 전년보다 15.4% 늘어난 300여만명의 유커들이 미국을 찾았고, 2022년에는 45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은 EU에 미국의 무역정책에 대항하는 강력한 공동성명서를 만들 것을 압박했다고 로이터통신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류허 부총리와 왕이 외교부장 등 중국 고위 관계자들은 최근 벨기에 브뤼셀, 독일 베를린,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EU 측에 이런 제안을 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안에는 중국과 EU가 손잡고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내용도 있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참석하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자국의 어떤 부문을 유럽에 개방할지 처음으로 제안하려 한다는 뜻도 밝혔다. EU의 한 외교관은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분쟁에서 EU가 한편이 돼 달라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 차이나모바일의 미국 시장 진출을 불허하고, 중국은 미국 반도체 대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하는 등 미·중 무역갈등이 정보기술(IT) 분야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만 반도체업체 UMC는 최근 중국 푸저우시 법원이 미국 반도체업체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금지 예비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번 명령은 마이크론의 D램, 낸드플래시 관련 제품 등 26개 제품에 적용된다. 마이크론과 UMC는 지난해부터 중국 법원에서 영업 기밀 탈취 등을 놓고 다툼을 벌여왔다. 이번 악재로 3일 뉴욕 증시에서 마이크론 주가는 한때 8% 하락하는 등 급락세를 보였다.
미국 상무부 산하 통신정보관리청(NTIA)은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차이나모바일의 미국 통신시장 진출을 허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차이나모바일이 2011년 미국에 통신시장 진출 신청서를 낸 지 7년 만에 사실상 거부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NTIA는 “차이나모바일이 중국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착취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당국은 “터무니없는 억측과 고의적인 억압”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