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 자루로 미술계를 놀라게 하고 싶은 두 화가의 개인전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갤러리 룩스에서 개최 중인 김은주(53) 개인전 ‘그려보다’(∼29일)와 율곡로 이화익갤러리에서 마련한 차영석(42) 개인전 ‘우아한 노력’(∼14일)이 그것이다. 두 작가가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연필심이 만들어내는 광물성 검은색의 매력이다.
신라대 미술학과 출신의 김 작가는 30년 가까이 연필이라는 소박한 재료 하나만으로 경이로운 화면을 만들어왔다. 흰 바탕에 수행하듯이 그어서 쌓아올린 수천수만 개의 연필선으로 장미꽃 등의 이미지를 표현해왔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기존의 꽃에서 나아가 파도, 바람 등 추상적 이미지를 그린 신작을 내놨다. 연필심의 흑연가루가 종이 표면에 묻어 빚어내는 광택은 거울처럼 반사하기도 하지만, 연필선의 방향을 통해 마치 붓 터치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연필 하나만 사용하는 재료적 한정성 때문에 그만큼 획의 방향 등에 정교한 계산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보는 방향에 따라 검은 화면에 거대한 일렁임이 일어나며 색다른 감동을 준다.
작가는 “검은 형상은 마냥 검기만 한 게 아니라 조명의 밝기와 각도,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색이 달라진다. 검은색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면서 율동감마저 갖는다”고 밝혔다.
김 작가의 검은 회화가 ‘고혹적인 격랑’ 같다면 차 작가의 작품은 비단실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수예품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출신인 차 작가는 2009년 금호미술관의 금호영아티스트로 선발돼 첫 개인전을 하면서 ‘연필 작가’로 살아왔다.
근년 들어 연필심이 만들어내는 검은색과 함께 금색 펜, 컬러 펜을 사용하며 변화를 시도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는 초심으로 돌아왔다. 완전히 연필만 사용해 ‘검은 회화’를 그린 것이다. 작품 속에는 운동화 화병 찻잔 분재 등의 이미지가 패턴처럼 펼쳐져 있다. 이는 여행의 추억으로 모은 것이거나 취미 삼아 수집한 오브제, 혹은 타인의 소지품 중 좋아하는 물건들이다. 따라서 그에게 연필 작업은 삶을 반추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수개월씩 걸리기에 연필선을 긋는 행위는 지난한 노동이 필요하다. 한껏 우아하지만 물밑에서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백조 같은 작업이다. 수채나 유화물감이 만들어낼 수 없는 검은 연필심이 부리는 마법 탓에 그들은 오늘도 이런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