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결핵으로 죽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갑자기 열이 나고 몸이 약해지는 게 느껴지면 결핵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가는 게 흔해요. 의사들도 결핵약을 먹어요. 폐에 구멍이 난 적이 있다고 그래요. 그런데 사람들은 결핵약을 먹으면 죽는다고 생각해요. 결핵약이 독하잖아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약만 먹으니 눈도 안 보이고, 간도 안 좋아지고 더 아파진다는 인식이 강해요. 또 대부분은 결핵이 못 먹어서 온 병이라고 생각해서 더 약을 안 먹기도 하고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여자들은 40세가 넘으면 다 할머니처럼 보여요. 애들도 병에 많이 걸리는데, 백일해, 홍역 예방주사는 무료로 놔줘요. 못 맞는 애들도 있지만…. 의술도 안 좋고 의사들 월급도 없으니 병이 잘 안 낫는 경우가 많아요.” 4년 전 남한에 온 북한이탈주민 A씨는 북한 생활 당시 의과대학을 중퇴한 상태였다. 아버지 또한 의사였다. 그가 본 북한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음식 섭취가 어려워 면역력이 많이 저하돼 있고, 치료에 대한 인식도 낮았다. 병원을 찾는 대신 시장에서 아편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시적으로 통증을 완화시키는 것이 그들의 치료법이었다. 그러다 아편에 중독된 사람도 많았다. 어떤 사람은 재산을 모두 팔았고, 어떤 사람은 정신분열이 일어나 가족을 폭행했다.
의술도 부족했고, 의사도 부족했다. A씨에 따르면 북한 의사들은 월급이 없다. A씨가 의과대학을 중퇴한 이유기도 하다. 사명감 하나로 환자들을 돌보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음식점, 약국 등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진료가 밀리면 환자들은 진료를 봐 달라며 음식이나 돈을 줬는데, 의사가 없어 10시간 이상 진료를 기다리다 사망한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약물 관리도 제대로 안 됐는데 의료진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도 약국에서 구매가 쉬웠다. 입원을 해도 병원식에 대한 규제가 없어서 민간요법에 의지한 채 보호자가 가져온 음식을 섭취했다.
불과 4년 전 북한의 이야기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보건의료 분야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지만 A씨가 회상한 북한의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후 판문점 선언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남북 교류에 대한 사회 전 분야에서 기대가 높다. 하지만 의료계는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를 가장 먼저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 보건의료인가=보건의료 분야는 남북 교류를 떠나 북한 주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영역이다. 각종 산업 교류가 본격화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와도 직결된다. 남북 간 건강격차 해소는 향후 인력 등 상호교류에 있어서도 선제 돼야 할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남북한 간 ‘기대수명(출생자가 출생 직후부터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 격차는 12년이나 벌어져 있다. 북한의 영아사망률은 우리나라의 7.6배였고, 성인 남성 평균 신장 격차도 15㎝나 된다. 5살 미만 어린이 27%는 만성영양결핍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상민 서울대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교수는 “아직 정치·외교적으로 남북 간 냉전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비정치적 관점에서 교류협력 시작할 수 있는 부분은 보건의료다. 이를 통해 건강격차를 줄여야 상호 간 인적교류가 시작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영전 한양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남북 교류가 경제적 측면만이 강조돼 진행될 경우,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다. 이는 다시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문제로 작동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따라서 경제적 교류는 사회안전망이라는 또 하나의 축과 함께 진행돼야 하는데,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영역은 보건의료 부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보건의료 분야에 감염병과 같이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보건의료 분야는 기본권인 생명권, 생존권과 직결되는 분야이다. 건강권은 인간의 천부 인권이며, 문화, 과학, 경제 등 전반적인 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라면서 “작년 11월 판문점을 넘어 귀순한 북한 병사에게서 다량의 기생충이 발견돼 화제가 됐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남북한이 유행하는 질병이 다르다. 이는 교류가 활성화될 시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 공동 이익 위해 ‘감염병’ 문제 해결 시급=의료계는 특히 ‘감염병’에 대한 교류가 먼저 시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감염병에 대한 문제 해결은 보건 당국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난 5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 출범 1년간 복지부 주요 성과와 계획’ 브리핑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감염병의 경우 남한과 북한이 따로 구분돼 있지 않다. 향후 남북 간 인적교류가 활발해지면 남의 감염병이 북으로 가고 북의 감염병이 남으로 올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결핵의 경우 OECD회원국 중 유병률 1위인 우리보다 북한은 3배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7년 세계결핵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결핵환자는 13만명에 달한다. 북한의 사망원인 중 감염병 비율이 31%로 남한(5.6%)보다 훨씬 높다는 보고도 있다. 여러 가지 결핵치료제에도 제대로 반응을 안 하는 다제내성결핵균에 감염된 환자도 많다. 게다가 휴전선 근방에서 발생하고 있는 말라리아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감염병이다.
또 북한에서는 예방접종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에서 홍역이나 볼거리같은 질환도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결핵을 포함해 ▶말라리아 ▶B형간염 ▶성병 ▶기생충감염 ▶호흡기 감염병 ▶홍역 등 예방접종 관련 감염병 등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있었다. 기생충 감염의 경우 2005∼2008년 기준 청소년은 35.5%, 성인은 24.6%가 감염됐는데, 이는 남한의 12배 이상에 달하는 수준이다.
신영전 교수는 “감염병 영역은 남북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만 하는 영역이다”라며 “시급히 남북 당국자가 만나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가적 정책을 수립하고 상호 협력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또 남북 정부, 민간부문, 국제사회 간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조직의 설치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원’ 아닌 ‘협력’으로 북한 실태 파악해야=교류가 시작되기 전에는 북한 의료 실태 현황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의 의료 격차와 차이를 알지 못한 채 의료교류가 시작되면 각종 혼란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역 간 의료 격차가 발생하는 것처럼 북한 지역에도 양적으로 인프라가 부족할 수 있다. 보건의료서비스 전달 기능 실조나 남북 간 제도의 불일치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특정 집단-지역의 긴급 재난 발생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기에는 북한의 의료재정과 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함께 마련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북한 의료 인프라, 의료전달체계, 질병 유병률 등 현황을 확인하고 대응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기구도 북한의료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정보들이 신뢰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에 따라 우리는 ‘먼저 찾아온 통일’이라고 불리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진료하면서 북한 주민의 의료 상황을 간접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2006년부터 북한이탈주민들을 진료하고 있고, 통일보건의료학회는 북한이탈주민 진료 가이드라인을 구축했다. 정기현 원장은 “앞으로 북한과 교류하면서 북한 주민의 건강상태가 제대로 파악되면 진료 프로토콜(protocol)이나 치료 지침 등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정확한 북한 의료실태를 파악해 원활한 교류를 하려면 북한과 신뢰를 쌓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을 ‘지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협력’ 할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 입장이다. 과거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과 일방적 협력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 이익을 향상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민 교수는 “남북의료교류는 의료 지원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교류다.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을 해야 하고, 그들의 강점과 특징, 우리의 강점과 특징을 가지고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교수는 남북한의 상호 강점의 시너지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사업을 확대하고, 북한 상황에 꼭 필요한 영역을 경제성 평가에 근거해 교류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영전 교수는 “무엇보다 경제적 이윤만이 앞서서는 안 된다. 경제교류가 야기할 문제들을 사전, 사후에 막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정기현 원장 또한 “원칙과 기준 없이 북한에 민간 의료서비스가 유입되면 북한 의료 시장이 빠르게 시장화될 수 있다. 보건의료를 영리 수단으로 이용했을 때 생기는 피해는 돌이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의료교류에 필요한 정책과 지침개발, 기술지원을 구축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복지부도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에 대비해 지난 5월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대북 지원방안을 검토하는 테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북한과의 교류가 단절된 지 10여 년이 흘렀고, 그동안 우리가 변한만큼 북한도 변했다. 이전에 시행됐던 대북 의료지원과는 다른 행태를 보여야 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 기류가 의료교류로 인해 지속될 것인지 기대가 되는 동시에 새롭게 마련될 남북의료교류 정책에 의료계의 제언이 함께 녹아 들어갈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유수인 쿠키뉴스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