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 장국영(장궈룽)이 초콜릿을, 주윤발(저우룬파)이 청량음료를 광고하던 시절이었다. 1988년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소년은 왕조현(왕쭈셴)의 ‘천녀유혼’을 보겠다고 재개봉 영화관만 5번을 갔다. 용돈을 아껴 결국 비디오테이프를 샀다. 50번을 봤는지 100번을 봤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전도 없이 중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2018년 어른이 된 소년은 중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었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위치한 콘텐츠 기획사 스마트미디어의 배영준(46) 대표는 힙합그룹 N1FT를 프로듀싱해 한·중 동시 데뷔를 목표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1988년에 대한 응답이었다.
대기업 연구원 탈출한 ‘홍콩영화 키즈’
가만히 있었으면 지금 더 높아졌을까. 배 대표는 전도유망한 대기업 사원이었다. 2001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중국어 능력 덕분에 LG전자 중국총괄사장의 전략 고문을 맡았다. 어떻게 보면 왕조현 덕분이었다. 비록 경제연구원에 다녔지만 ‘홍콩영화 키즈’인 그의 끼는 여전했다. 2006년 중국 주재원으로 활동하며 당시 개념조차 없었던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었다.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생 10명을 선발해 LG 휴대전화를 홍보하는 3∼5분짜리 영상을 제작했다.
오라는 데가 많았다. LG를 나와 포스코에 갔고 다시 SK 중국 주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헛헛했다. 못 이룬 꿈 때문이었다. 배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방송국 PD를 꿈꿨다. 대학 졸업 무렵 IMF 외환위기로 방송국이 PD 채용을 중지하자 일반 기업을 선택한 그였다. 중국 주재원 생활 5년차 때 그는 결심했다. “아무래도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일이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미디어 업계에서 일을 하기로 했죠.”
배 대표는 2011년 CJ E&M 중국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꿈꾸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들였다. 현실은 꿈과는 달랐다. 야심차게 한·중 합작 드라마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차가웠다. “그땐 중국이랑 뭘 하자고 하면 드라마 제작사들이 콧방귀 뀌었어요. ‘공산주의 나라에서 뭘 할 수 있겠어?’ 이런 반응이더라고요.”
간신히 제작사를 섭외했지만 난관은 끊이지 않았다. 한국 드라마 작가가 재미있다고 짠 스토리를 중국 관계자들이 이해 못할 때가 많았다. 문화적 차이는 단단한 장벽이었다. 배 대표는 몸으로 부딪혔다. 중국 관계자가 A4 용지 20장에 달하는 드라마 시놉시스를 수정해달라고 요청하면 작가와 밤을 새워 하루 만에 완성했다. 그는 중국 제작사 대표가 한 말을 인상적으로 들었다며 소개했다. “한국 사람들이 일한 결과를 보면 믿겨지지가 않는다. 치열하게 일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다.” 드라마는 결국 완성됐다.
‘걸그룹’으로 홀로서기… ‘사드’로 위기
홀로서기는 화려하게 시작했다. 2014년 배 대표는 CJ E&M을 퇴사해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연예기획사 ‘씨팝스쿨(CPOP SCHOOL)’을 세웠다. 현지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가 1년 동안 투자하겠다고 설득해서 이뤄진 창업이었다. 개업식에는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관계자와 마마무로 알려진 RBW엔터테인먼트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업계 사람들과 기자들이 뒤얽혀 북적거렸다. 행사가 끝난 뒤 사무실에 혼자 남은 배 대표는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고 말했다. 2∼3주 정도 제대로 잠을 못 잤다.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첫 걸그룹 ‘세븐센스(SEVEN SENSE)’는 순조롭게 데뷔했다. 현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받았다. 아이돌 선진국인 한국의 인력이 중국 소녀들로 구성한 걸그룹이었기 때문이었다. 노래와 춤 모두 한국에서 선생님을 데려와 가르쳤다. 뮤직비디오도 한국 스태프가 촬영했다. 사무실에는 기자가 끊이지 않았다. 배우 박해진 주연의 한·중 합작드라마 ‘남인방2’의 삽입곡 작업을 맡기도 했다.
더욱 의미있는 성과는 중국 2위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인 ‘쿠거우 뮤직’에서 K팝 카테고리 운영권을 따낸 것이었다. 한국 음악을 소개하는 일을 맡으면서 더욱 공격적으로 아이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배 대표는 쿠거우와 MOU를 맺고 공동으로 걸그룹을 기획하기로 했다. 6개월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30명의 연습생을 뽑았다. 1년 동안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
물론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다. “현지 파트너가 2명 있었어요. 그중 투자 자금을 대기로 한 파트너가 도박에 손대 떠나게 됐어요” 처음 키운 걸그룹 세븐센스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것도 아픈 지점이었다. 그룹 멤버가 현지 연예계 관계자와 스캔들에 휘말리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연습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악재만은 배 대표도 극복할 수 없었다. 박근혜정부가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한국에 배치한다고 발표하자 중국에 ‘한한령(한류제한령)’이 내려졌다. 2016년 중반부터 모든 중국인 파트너가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했다. 회사 매출의 70%를 담당했던 쿠거우와의 거래도 중지됐다. 버는 돈도 없이 매달 4000여만원을 지출하며 6개월을 버텼다. 개인 재산을 팔고 빚을 내 6개월을 더 버텼다.
회사를 접는 일은 만드는 일보다 버거웠다. 배 대표는 직원들에게 회사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하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말했다. “나를 믿고 선전까지 온 한국인 트레이너들, 가족같이 지낸 연습생들한테 ‘다음 주에 회사 닫아야 할 것 같아’ 이야기했는데 힘들었죠. 정말 아끼던 한국인 연습생은 말도 없이 귀국해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한밤중에 사무실에 들어가 회사 집기를 빼왔다. 작은 월세 방을 얻어 새 사무실을 꾸렸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단 3명만 곁에 남았다. 영상 감독과 콘텐츠 기획자 그리고 남자 연습생 1명이었다. 이 연습생이 배우 함소원과 결혼해 화제가 된 중국인 사업가 진화다.
다시 도전… 이번에는 중국 힙합
지난달 초 오랜만에 한국에 온 배 대표는 3주 동안 쉬지 않고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를 만나며 새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가 가장 관심을 쏟고 있는 새 도전은 ‘절대아제 시즌1’ 프로그램이다. 중국의 힙합 그룹 N1FT를 한국에 데려와 길거리 버스킹 공연을 하고 랩 배틀도 하면서 점차 성장해 데뷔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계획이다. 쇼미더머니 시즌7에 출전해 성과를 내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벌써 한국관광공사, 프로스펙스 등과 협업하기로 약속했다.
배 대표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회사를 재건해 삼성전자, LG화학 등의 협찬을 받아 웹드라마와 리얼리티 예능 등 100여개 콘텐츠를 제작했다. 5분 내외의 짧은 영상으로 텔레비전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젊은 소비자층을 겨냥했다. 회사가 자리 잡자 힙합 음악으로 새로운 콘텐츠에 도전한다. 그는 “앞으로 한·중 대중문화산업은 일방적 수출에서 벗어나 상호 교류로 나아가야 한다”며 “한국과 중국에서 공동 제작한 콘텐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