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근병(61) 작가는 35세 때인 1992년 국제 미술계의 샛별로 떴다. 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제전인 카셀도쿠멘타에 초청되면서였다. 한국인으로는 백남준에 이어 두 번째였다. ‘제2의 백남준’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이후 그는 리옹비엔날레(1993), 일본 프로젝트(1993), 도쿄 갤러리 큐(2003) 등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국내에서는 1998년 국제갤러리 전시를 끝으로 휴지기에 들어갔다. 그러다 2012년 서울 일민미술관 귀국전을 통해 건재를 과시했고, 이번에 6년 만에 미술관 전시를 가졌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생존은 역사다’전이 그것이다. 최근 작가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2007년부터 해오던 일본 도호쿠예술대학 객원교수도 지난해 중단했습니다. 이젠 완벽한 본업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시동을 거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이번 전시에선 카셀에서 주목받았던 그 작품의 일부가 나왔다.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랑데부’는 흙으로 덮은 무덤과 대형 원주를 마주 보게 설치하고, 각각에 소의 눈처럼 끔벅거리는 눈(目) 영상을 결합한 것이었다. 각각 서양이 갖는 수직적 권위와 동양이 갖는 포용성을 상징하며 성찰적 메시지를 던졌다. 이번 전시에는 ‘동양의 눈’이 재설치됐다.
작가는 “무덤은 개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성이 있으면서 쉽게 이해되는 장점이 있다”며 “그러면서 무덤의 형태는 가슴, 배, 성기 등 인체의 다른 부분과 조형적 유사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삶과 죽음이 영속되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눈 또한 괴물의 눈처럼 커다란 외눈박이라 강렬하다. 그는 “어릴 때 나무 대문에 난 옹이구멍으로 본 세상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처럼 신기했다. 그때부터 외눈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의 작품에서 눈은 전쟁과 재난을 비롯한 근현대사의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만들어내고 또 지켜보는 인간의 눈을 의미한다.
신작 ‘십이지신상’은 카드처럼 빙 둘러쳐진 12채널 비디오에 버락 오바마, 체 게바라, 레닌, 마오쩌둥 등 세계를 이끈 12명의 인물 초상을 담고 있다. 이 초상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는 깜박이는 외눈이 나타난다. 전시 공간에는 태아의 심장 박동이 울린다. 세계 속의 나를 자각하게 하고 역사와 나의 관계를 사유하게 하는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자신을 미술계 스타로 키운 ‘외눈’이 2018년 신작에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제 작품은 무덤에서 12지신상으로 진화했다. 12지는 보편적 언어이며 인류를 뜻한다. 그것이 어미의 자궁 속에 들어간 느낌을 주도록 전시장 자체도 둥글게 설치했다”며 차이를 강조했다.
경희대 미대 출신인 그는 처음에는 사진보다 정교한 하이퍼리얼리즘 회화를 했다. 한국미술계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80년대 초반부터 비디오를 매체로 선택해 작업을 전환했다. 그러다 ‘외눈박이’ 작업이 속칭 출세작이 됐다. 그런데 그것이 무덤에 있건, 원주에 있건, 카드에 있건 26년이 지나도록 ‘외눈박이’ 영상작업의 연속선상에 있다. 새롭게 출사표를 던진 전시이기에 변신을 기대했던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아쉬움을 주는 전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