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영국 솔즈베리 인근 건물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된 40대 남녀의 몸에서 검출된 독극물은 러시아가 개발한 신경작용제 노비촉(Novichok)으로 확인됐다고 영국 경찰이 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노비촉은 지난 3월 암살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망명 러시아 스파이 부녀의 몸에서 검출된 것과 같은 약물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40대 남녀가 발견된 곳은 3월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쓰러진 장소에서 12㎞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스크리팔 암살 시도 당시 영국 정부는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하고 강력 항의했다. 스크리팔이 영국에 러시아 기밀을 넘기고 망명한 스파이였고, 2013년부터 러시아 군사정보국(GRU)이 스크리팔 부녀를 감시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도 나왔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당시 영국 정부의 주장을 강력히 부인했다.
영국 정부는 두 사건의 연관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지드 자비드 내무장관은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은 3월 솔즈베리에서 일어난 무모하고 잔인한 공격에 이어 일어났다”며 “현재 진행 중인 조사와 관련해 정부 비상대책회의(COBRA)를 주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국 경찰은 두 사건의 연관성을 입증할 증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 노비촉 노출 경로와 방법은 물론 두 사람이 스크리팔 부녀 사건의 오염물질이 제거됐던 장소를 방문한 기록도 아직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닐 바수 영국경찰 대테러대책본부장은 “두 사람이 러시아 공격의 표적이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노비촉은 일반 대중에게 노출될 위험은 극히 낮은 물질”이라고 말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1일 벨기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나토 회원국과 함께 노비촉 중독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물을지 주목된다. 영국은 스크리팔 암살 시도 당시 러시아 외교관 22명을 추방했고, 미국을 비롯한 영국의 동맹국에서도 100여명의 러시아 외교관이 추방됐다.
미국 등이 또 한 번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3일 영국 방문에 이어 16일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두 나라 중 어느 한쪽 편을 들고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블룸버그통신도 “나토 정상회의와 미·러 정상회담이 연달아 열리는 민감한 시점”이라며 “메이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무엇을 약속할지 벌써부터 걱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