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한반도 해빙 모드와 북·미 간 화해 분위기는 평양의 거리 풍경 곳곳에 녹아들어 있었다. 우선 과거 평양 시내에 설치된 대형 선전물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던 반미(反美) 구호들이 사라졌다. ‘일심단결’ ‘계속혁신, 계속전진’ ‘만리마 속도 창조’ ‘인민생활에 결정적 전환을’ 등 내부 결속과 경제우선 정책 노선을 강조하는 내용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지난 3일부터 남북 통일농구 취재차 평양을 방문 중인 남측 공동취재진이 발견한 반미 구호 선전물은 만수대 언덕 인근에 설치된 것이 전부였다. 과거 평양을 다녀온 적 있는 한 당국자는 5일 “평양에 선전물 숫자도 크게 줄었지만 무엇보다 반미 관련 내용이 거의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에도 반미 군중집회를 취소하고, 관영 매체들에 미국을 직접 비난하는 기사·글을 게재하지 않는 등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날 오전 남측 대표단 숙소인 고려호텔로 직접 찾아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만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도 “평양의 모든 것이 그때(조 장관이 직접 방문했던 2007년)보다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양 시민들은 북한 정권수립 70주년 기념일(9월 9일)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고려호텔로 돌아오는 길목에 있는 인민대학습당 앞 김일성광장에는 저녁마다 대규모 인원이 집체극을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중년 여성들과 청소년을 중심으로 많은 수의 주민이 광장에 운집해 있었다. 북측 관계자는 “9·9절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호텔 상점과 미장원 등에서는 외국산 제품이 눈에 띄었다. 상점에는 해외 명품 가방이 미화 100달러 정도에 판매되고 있었다. 또 상점 내 별도 공간에서는 샤넬, 랑콤 등 해외 명품 브랜드 화장품과 향수도 200∼300달러의 가격표를 달고 진열돼 있었다. 호텔 미장원 내 직원은 북한이 자체 제작한 상품은 물론 비달사순과 일본산 용품을 사용했다.
취재진과 접촉한 북측 관계자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남측 경제 상황 등에 관심을 표했다. 한 관계자는 최근 감기로 휴가를 낸 문 대통령의 건강 상태와 관련해 “몸살이 나셨다는데 많이 안 좋으신 것이냐, 왜 그렇게 되신 것이냐”고 물었고, 서울의 주거비용(월세)을 묻기도 했다. 북측은 고려호텔 기자실에 서울과 국제전화로 연결되는 전화기를 제공했는데, 실제 서울과 깨끗한 음질로 통화가 가능했다.
남북 농구선수들은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각각 청팀(남측)과 홍팀(북측)으로 나눠 이틀째 친선경기를 펼쳤다.
평양=공동취재단,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