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영화’였고 엄청 좋아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는데….”(@se******)
“2018년에 설마 이 영화를 보겠다고요? 정말?”(@ke*****)
최근 영화 ‘레옹’(1995·사진)의 재개봉 소식이 전해진 이후 트위터에는 이런 글들이 올라왔다. 한두 사람의 의견이 아니었다. ‘#레옹_재개봉_불매’라는 해시태그를 단 트윗들이 줄줄이 게재됐다.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이 시대착오적 작품으로 전락해버린 순간이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레옹’은 오는 11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 개봉을 확정 지었다. 원 개봉판에서 23분 분량이 추가된 133분짜리 감독판을 고화질·고음질로 선보이는 것이다. 이 영화의 수입·배급사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측은 “작품 외적인 이슈 때문에 개봉을 지연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앞서 1998, 2013년에도 ‘레옹’의 감독판 재개봉이 진행된 바 있으나 이번처럼 여론이 냉랭한 건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작품 자체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여러 이슈들이 최근 몇 달 사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먼저 마틸다 역의 배우 나탈리 포트만의 고백이 있었다. 지난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된 ‘여성의 행진’ 행사에서 그는 ‘레옹’ 출연 이후 수차례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털어놨다. “13∼14세 무렵 생애 처음 받은 팬레터에 나를 강간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영화 평론가들은 감상평에서 나의 신체 일부분을 언급하기도 했죠.”
지난 5월에는 이 영화를 연출한 뤽 베송(59) 감독이 27세의 여배우를 성폭행한 혐의로 피소됐다. 베송 감독은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나 이미 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건 역시 소아성애적 내용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레옹’은 미성년 여성에게 집착하는 롤리타 신드롬을 자극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 왔는데, 페미니즘 열풍을 타고 이 같은 주장에 힘이 실렸다. 아울러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대중문화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대중의 잣대가 한층 정교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레옹’ 개봉 당시만 해도 연령차가 큰 남녀 관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존재하지 않았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의 관객들은 보다 세밀하고 민감한 시각을 갖고 있다. 여러 사회적 경험을 통해 같은 콘텐츠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