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15년 만에 다시 쏜 평화의 점프슛… 남북통일농구대회

2003년 10월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통일농구 3차 대회에서 북한의 이명훈(왼쪽)이 남한의 김주성을 앞에 두고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1999년 12월 통일농구 2차 대회가 열린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일보DB


뜨거운 실내코트에서 통일의 순풍이 다시 불어올까. 많은 관심을 모은 제4회 남북통일농구대회가 지난 4일과 5일 양일에 걸쳐 평양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남북은 4일에는 양측 선수들이 서로 섞인 채 혼합 경기를 가졌고 5일에는 남북 친선경기를 치렀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지만 15년 만에 재개된 이번 통일농구대회는 경기 결과보다는 경기 자체가 갖는 평화와 화합이라는 취지를 살리는데 주력했다. 선수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은 없고 웃음꽃이 가득했다.

통일농구대회는 한반도 화해·평화의 흐름과 궤를 같이 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남북교류가 싹 트던 1999년 9월 남자프로농구(KBL) 현대 걸리버스와 기아 엔터프라이즈, 한국여자프로농구(WKBL)의 현대산업개발이 류경정주영체육관 기공 기념으로 북한을 방문해 평양체육관에서 경기를 가졌다. 통일농구 1차 대회였다.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교류 및 협력 사업 등에 앞장 선 현대그룹 계열사 농구팀들이 남측을 대표했다. 1991년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 이후 단절된 남북 스포츠 교류에 물꼬를 튼 역사적 의미를 지닌 대회이기도 했다. 당시에도 하루는 혼합팀 경기를, 또 다른 날에는 남북이 맞대결을 펼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같은 해 12월 이번에는 북한 우뢰팀이 서울을 방문해 2차 대회가 진행됐다. 원래는 1차 대회에 나선 북한의 ‘벼락’팀이 참여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서울 방문 직전 팀이 바뀌었다. 이유는 바로 남한 팬들도 관심이 많은 235㎝의 북한 최고 센터 이명훈 때문이었다. 그의 서울 방문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는 높았다. 이에 부응하듯 북한은 이명훈이 속한 우뢰팀으로 팀을 바꿔 2차 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북한은 친선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KBL의 공인구가 아닌 자신들에게 익숙한 브랜드의 공을 갖고 경기하자고 요구했을 정도로 승부에 집착했다. 2차 대회는 흥행면에서도 성공적이었다. 이틀간 평균 1만5000명의 관객이 몰려 서울 잠실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평일 낮 시간대 경기였음에도 시청률이 15%를 넘어설 정도였다.

3차 대회는 2003년 10월 평양에서 열렸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육로를 통해 평양에 들어간데다 남북 체육교류의 상징인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경기가 열려 의미가 남달랐다. 남한은 허재와 이상민, 김주성 등 호화 멤버로 대표단을 꾸렸다. 북한은 허리 부상이 심해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던 이명훈을 내보내 맞불을 놓았다. 이명훈은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하는 것조차 힘겨워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빴지만 남한 최고의 빅맨 김주성의 슛을 블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거의 풀타임을 소화했다. 북한 관계자는 “이명훈이 통일농구의 중요성 때문에 자신을 빼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선수들 간 어색함은 없었을까. 99년 현대 선수 신분으로 북한을 상대했던 추승균 KCC 이지스 감독은 “양쪽 선수단 모두 처음에는 경직된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이명훈은 3차 대회 경기가 끝나고 진행된 만찬에서 허재·이상민 등에게 농담을 거는 등 남한 선수단에게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 4차 대회를 맞아 북한을 찾은 허재 남한 대표팀 감독은 “이명훈하고 사석에서 형·동생하며 친하게 지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 핵실험 등 남북관계가 경색이 되면서 농구교류도 중단됐고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북·미 간 무력충돌의 위기까지 갔던 한반도 정세는 올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고 남북 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극적으로 반전됐다. 농구광으로 불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바람대로 농구는 다시 남북화해의 전면에 서게 됐다. 여자농구는 8월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일팀 종목으로 선정됐다.

북한 농구의 실력은 어땠을까. 당초 세계 농구트렌드에 뒤처진 북한을 상대로 우리가 손쉽게 승리할 것으로 봤으나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다. 남한 남자 선수단은 1∼4차 대회 모두 완패했다. 4차 대회에서는 기존의 KBL 혼성팀이 아닌 국가대표팀이 나섰음에도 70대 82로 졌다. 여자 선수단은 지금까지 3승 1패의 우위를 보였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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