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8일(한국시간) 크로아티아와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 월드컵 여정을 마무리했다.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환호하는 장면을 보며 러시아의 팬들은 잠시 실망했지만 이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술집마다 ‘러시아’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컸고 인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춤을 췄다.
러시아 대표팀의 스타니슬리프 체르체소프 감독은 “우리는 우리를 향한 시선을 뒤집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0위인 러시아는 이번 본선 조별리그에 진출한 32개팀 가운데 최하위로 분류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개최국이긴 하지만 16강 토너먼트에서 겨룰 확률이 낮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상대보다 더 달리는 끈질긴 축구로 승리를 이어갔다. 개막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5대 0으로 완파하더니 이집트까지 3대 1로 이겼다. 16강전에서는 스페인과의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몰고 가 기어이 승리했다. 체르체소프 감독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믿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돌풍을 이어가는 러시아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희망에서 흥분으로, 환호로 바뀌어갔다”고 표현했다. 승부차기로 스페인을 잡아낸 뒤 벌어진 러시아 전역의 축제 분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직후의 환희에 빗대어졌다.
러시아를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개최국인 한국의 선전과 비교하는 기사도 쏟아졌다. 쉬지 않고 달린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졌지만, 정신무장은 나날이 새로워졌다. 미드필더 알렉산드르 사메도프는 8강전 직전 “우리가 원하는 건 조국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도전이 8강전에서 마무리됐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은 러시아의 경기력을 칭찬하는 평가로 가득했다. 체르체소프 감독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좋은 경기를 칭찬했다. 우리에게 ‘고개를 들라’고 했다”고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 선수들은 여전히 훌륭한 영웅이다. 경기장에서 죽을 만큼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