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先비핵화”, 北 “동시·균형적”… 근본적 이견 드러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이 지난 7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맞은편)과 회담하고 있다. 헤어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이 트위터에 공개한 사진이다. 김 부위원장 옆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트위터



北의 비핵화 관련 조치, 미사일 시험장 폐기뿐
美 요구에 한참 못 미쳐…종전선언 두고도 마찰
김정은, 일방적 비핵화 불만…폼페이오 면담 취소 분석도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24일 만에 열린 고위급 회담이 큰 성과 없이 끝난 건 비핵화 조건과 시기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가 여전히 컸기 때문이다. 미국은 비핵화의 핵심인 핵 프로그램 신고·검증을 우선 요구했지만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 정착, 완전한 비핵화의 동시적·균형적 이행을 요구하며 맞섰다. 북·미 정상이 마주 앉은 뒤에도 북핵 협상의 근본 틀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북·미 고위급 회담 이후 나온 양측의 엇갈린 평가를 보면 협상의 주도권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 외무성이 7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북측은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네 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북·미 간 다방면적인 교류, 정전협정 65주년(7월 27일) 계기 종전선언 발표,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 미군 유해 발굴을 위한 실무협상 시작이다. 이는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1∼4항을 각각 구체화한 것이다.

이 중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한 직접적 조치는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12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구두 합의했다고 밝힌 내용으로 새로울 게 없다. 미측이 요구한 핵 프로그램 신고·검증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결정에 대해서도 “우리가 취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불가역적인 폭파 폐기 조치에 비하면 대비조차 할 수 없는 문제”라고 깎아내렸다.

전직 외교부 당국자는 8일 “이번 고위급 회담의 성과는 ‘협상을 계속한다’는 것밖에 없다”며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발표를 기점으로 협상을 둘러싼 힘의 관계가 북한 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어 “북한 입장에선 서두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비핵화 과정이 상당히 늘어질 것이고,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CVID)에 걸맞은 결과를 얻어낼 가능성도 낮아졌다”고 했다.

북한은 특히 회담 시작 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대표단이 핵 프로그램 신고·검증에만 초점을 맞추자 발끈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 성명 중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 비난은 이 대목에서 나왔다.

북·미는 종전선언을 두고도 이견을 보였다. 북한 외무성은 종전선언을 ‘이미 합의된 문제’라고 하면서 “미국이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뒤로 미루어놓으려는 입장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북·미가 비핵화를 검증할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미군 유해 송환 절차를 논의하기로 한 건 진전이다. 워킹그룹 구성은 협상의 모멘텀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로이터 등 외신은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외무성 부상 라인이 다시 가동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 불발된 데 대해 “내가 그를 만날 계획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일방적 비핵화 요구에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면담 일정을 취소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2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사실을 공개하면서 “북한 지도자와 관계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두 차례 방북 때 모두 김 위원장과 면담했다.

권지혜 조성은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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