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이 지상파 방송의 마지막 독점 시간대를 공략한다. tvN은 오는 15일부터 일요일 오후 황금시간대에 예능 프로그램을 정규 편성한다. 지상파 방송을 피해 심야에 주요 프로그램을 배치하곤 했던 과거에 비춰보면 파격적인 편성이다. 지상파만 독점적으로 본방송을 내보냈던 주말 황금시간대에 케이블 채널이 진입하면서 ‘지상파 우위’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tvN은 일요일 오후 4시 40분에 ‘갈릴레오: 깨어난 우주’(이하 ‘갈릴레오’)를 편성한다. 실제 화성의 환경을 재현한 미국 유타주 화성탐사연구기지에서 출연자들이 화성 탐사를 목적으로 생존 훈련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어서 오후 6시 10분에는 ‘이타카로 가는 길’(이하 ‘이타카’)을 방송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노래 영상 조회수로 얻은 경비로 터키에서 그리스 이타카섬까지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시간에는 KBS가 ‘열린음악회’ ‘1박2일’을, MBC는 ‘복면가왕’을, SBS가 ‘런닝맨’을 방송하는 시간대로 지상파의 핵심 프로그램들이 포진해 있다.
시청자 입장에선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 간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과거 케이블 방송은 지상파 황금시간대를 피해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tvN은 젊은층이 TV 앞을 떠나 시청률이 떨어지는 금·토요일 심야에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편성했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도 금요일 밤 9∼10시에 배치했다. 하지만 케이블 프로그램이 압도적인 화제성으로 지상파 프로그램을 누르자 사정이 달라졌다.
이기혁 tvN 콘텐츠편성전략팀장은 “작년에 평일 드라마 라인업(월화·수목드라마)을 완성해 지상파 미니시리즈를 공략했다. MBC 무한도전이 종영할 땐 ‘놀라운 토요일’을 편성해 토요일 프라임 타임에도 진입했다”며 “지상파가 독점하는 일요일 예능 시장만 남아있었는데 올해 숙원사업처럼 진행해 새 프로그램들을 론칭하게 됐다”고 말했다. 뉴스만 빼고 저녁 시간 기준으로 보면 지상파와 편성이 똑같아졌다.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하는 PD들이 지상파 출신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갈릴레오를 연출한 이영준 PD는 SBS 출신으로 2016년 ‘토요일이 좋다-주먹쥐고 소림사’를 제작했다. 이타카를 만든 민철기 PD는 MBC에서 ‘쇼! 음악중심’ ‘복면가왕’ 등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주로 담당했다. 지상파 방송국에서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던 이들이 케이블 채널로 옮겨 다양한 실험에 나선 것이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