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성 히어로(Unsung Hero·이름 없는 영웅)’는 말 그대로 팀의 조연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박지성은 깜짝 골이나 화려한 개인기 같은 플레이가 적었지만 활발한 활동량과 전술 기여도로 인해 맨유의 ‘언성 히어로’로 각광 받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4강 진출 팀에도 묵묵하게 그라운드를 뛰며 경기에 쏠쏠히 기여하는 ‘언성 히어로’들이 활력소가 되고 있다.
벨기에의 미드필더 악셀 비첼은 팀의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골이나 도움은 없지만 비첼은 날카로운 패스로 기회를 만들거나, 수비 진영까지 내려와 태클하며 공수 역할을 두루 소화한다. 경기당 평균 10.8㎞씩 뛰어다니며 중원 싸움에서 주도권을 가져다준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런 다재다능함이 코칭스태프의 신뢰를 받는 이유”라며 “경기장 안팎에서 비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칭찬했다.
28년 만에 4강에 오른 잉글랜드의 선전 요인으로 해리 케인의 결정력, 라힘 스털링의 돌파력, 탄탄한 스리백 수비 등이 꼽힌다. 하지만 조던 헨더슨의 존재 역시 무시 못한다. 헨더슨은 공을 빼앗기 위해 상대를 가차 없이 압박하며 괴롭힌다. 전방으로 찔러주는 롱패스는 상대가 막기 어렵다. 7일(한국시간) 열린 스웨덴과의 8강전에서 헨더슨은 전반 44분 긴 패스로 스털링에게 골이나 다름없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영국 ITV 해설가이자 전 국가대표 출신인 게리 네빌은 “헨더슨은 굉장히 헌신적으로 뛰어 감독들이 꿈꾸는 유형의 선수”라고 높이 평가했다.
크로아티아의 오른쪽 풀백 시메 브르살리코는 지치지 않는 오버래핑과 빠른 스피드로 팀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정확한 타이밍에 이뤄지는 태클도 장점이다. 브르살리코는 같은 포지션이었던 크로아티아의 전설 다리요 스르나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우며 팀의 4강 이상 도약을 꿈꾸고 있다.
프랑스의 원톱인 올리비에 지루는 이번 월드컵에서 독특한 언성 히어로다. 부동의 스트라이커임에도 월드컵 본선 5경기에서 아직 득점이 없다. 전체 슈팅 7개 중 유효슈팅은 하나뿐이다. 팬들의 비난이 제기될 법하지만 프랑스 대표팀 내에서 지루에 대한 신뢰는 높다. 그는 킬러로서의 역할도 부여받지만 193㎝의 큰 키를 활용해 수비수의 견제를 끌어내며 공간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2선에 위치한 킬리안 음바페나 앙투안 그리즈만이 득점하며 빛날 수 있는 것도 지루 덕분이다. 지루는 “내가 득점하지 못해도 팀이 우승한다면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역할에 충실할 뿐”이라고 말했다.
32세인 지루는 평균 연령 26세인 젊은 프랑스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맡는다. 지루는 지난 16일 열린 호주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붕대를 감고 나와 뛰는 투혼을 보여줬다.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 감독은 “지루는 우리 팀에 정말 필요한 선수다. 그는 어려운 임무를 맡겨도 불평 없이 수행한다”며 꾸준한 믿음을 나타내고 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