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기회 잡으면 기적은 김정은 당신의 것”… 美, 北에 ‘베트남의 길’ 공식 제시



“베트남이 한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미국과의 동반자 관계를 맺고 번영을 누리는 것을 봐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길을 따라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기회를 잡는다면 베트남의 기적은 김 위원장, 당신의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에서 연설하며 김 위원장에게 북한의 경제 발전 모델로 베트남을 제시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의 미래상에 대해 ‘베트남 모델’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현지 기업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진 연설의 대부분을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채울 정도로 베트남 모델을 강조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정권을 유지하면서도 전쟁을 치른 미국과 관계를 개선한 이후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과 베트남은 과거에 전쟁터의 적이었으나 지금은 군사 부문까지 협력하고 있다”며 “3월에는 미국 항공모함이 베트남 다낭에 입항했는데 이는 베트남 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1960, 70년대에 미국 국무장관이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이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논의할 것이라고 생각했겠느냐”며 “미국은 북한과 언젠가 이런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베트남이 놀라운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봤기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정말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1995년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후 아세안(ASEAN)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국제기구에 잇따라 가입했다. 2000년에는 미국과 무역협정에 서명했다. 2008년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143달러를 달성하면서 중간소득 국가에 진입했다. 베트남의 올 상반기 GDP 성장률은 7.08%로 최근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과거 20년 동안 베트남과 미국의 무역은 80배 성장했다”며 “미국 기업들은 베트남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거뒀고, 베트남도 놀라운 발전을 경험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90년대 베트남 인구의 60%가 빈곤층이었으나 이제는 10%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베트남이 개혁·개방에 나서고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는 과정에서 주권이 침해당하거나 정부 형태가 위협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믿어 달라는 호소다.

폼페이오 장관은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게 된 계기가 베트남 전쟁에서 숨진 미군 유해를 돌려주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작지만 놀라울 정도로 의미 있는 첫 조치(유해 송환)가 관계 개선을 낳았고 95년 국교 재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북한도 베트남처럼 미군 유해 송환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걸 시사한 것이다. 북·미 간 미군 유해 송환 협의는 12일 판문점에서 시작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마지막으로 “김 위원장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며 “당신이 이 기회를 잡는다면 베트남의 기적은 당신의 것이고, 당신은 한국인들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중국은 중국 무역에 대한 우리의 자세 때문에 북한에 부정적 압력을 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김정은이 우리가 서명한 합의문과 악수를 존중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석운 기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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