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갑자기 종전선언 강조하는 이유, 구속력 없지만 체제 보장 ‘입구’



북한은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긍정이든 부정이든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그러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6∼7일 평양을 다녀간 뒤로 적극적으로 변했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이미 합의된 문제’(7일 외무성 담화)로 표현하면서 미국이 이런저런 구실로 발을 빼려 한다고 압박했다. 이는 북·미 관계 정상화의 불가역성을 담보하고,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을 동시적으로 주고받는 협상 틀을 세팅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북한 입장에서 종전선언은 그 자체로 북·미 관계 개선을 입증하는 성과다. 정권 수립일(9월 9일)과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의 초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북한으로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방위적인 대외 행보에 따른 결과물을 내보일 시점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중단됐지만 이는 북한의 주장대로 불가역적인 조치는 아니다”라며 “북·미 관계 개선을 대내적으로 선전하기엔 종전선언의 효용이 더 크다”고 말했다. 또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담긴 4개항을 동시에 주고받는 협상 구도를 초기에 만들어놓지 않으면 뒤로 갈수록 비핵화에만 초점이 맞춰진 불균형한 협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한반도 주변국 정상들이 ‘더 이상 전쟁 상태가 아니다’고 선언하고 나면 향후 북·미 협상이 안 돼 판이 깨질 경우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진다”고 했다. 거꾸로 말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북한의 전향적 조치 없이 종전선언을 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뜻이다.

종전선언은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의 ‘입구’에 해당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국제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종전선언은 4·27 판문점 선언에 ‘연내 추진’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조만간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시기상조’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최근 종전선언 시기와 관련해 “유연성을 갖고 대처해 나가겠다”고 한 것도 미 정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한국은 정전협정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선언을 한다는 큰 계획을 세우고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을 중요 계기로 봤다.

종전선언이 대북 제재 완화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는 게 대다수 의견이다. 다만 종전선언에 상응하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면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제재 완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여론이 일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 역시 몇 개월 내 가시적인 성과를 못 내면 국내 여론의 압박을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비핵화 워킹그룹에서 종전선언과 무엇을 맞바꿀지 ‘밀당’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지혜 이상헌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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