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에서 12일 열릴 것으로 예상됐던 북·미 간 미군 유해 송환 실무회담이 북측의 불참으로 열리지 않았다. 북한은 대신 유엔군사령부 측에 장성급 회담 개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오늘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에 오는 15일 장성급 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고 말했다. 유엔사는 북측 인사들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정위 소회의실(T3)에 나타나지 않자 전화를 걸었고, 북한은 이에 15일 장성급 회담을 열자고 역제안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북측은 통화에서 ‘유해 송환 문제를 협의하는 격을 높이자’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안다”며 “북한군과 미군 장성이 회담 대표로 참석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엔사 측은 미 국방부에 북한의 제의 내용을 전달하고 답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과 유엔사 간 장성급 회담은 2009년 3월 마지막으로 열렸다. 이번에 회담이 성사되면 9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유해 송환은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4항에 담긴 내용으로 이번 회담은 성명 이행을 위한 조치로 주목받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6∼7일 방북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고위급 회담을 한 뒤 “생산적인 대화를 했다”며 유해 송환 실무회담 계획을 발표했다. 미군 유해를 넘겨받는 데 쓰일 나무상자 100여개는 지난달 하순 판문점으로 이송돼 JSA 유엔사 경비대가 보관 중이다.
유해 송환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면 비핵화 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공동성명의 핵심인 북·미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에선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북·미 간 후속 회담이 답보 상태에 빠지자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론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 직전까지 갔을 때 전격적인 5·26 남북 정상회담으로 회담의 불씨를 살려냈었다.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내 종전선언’ 목표를 재확인한 것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추동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된다.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이나 유엔총회가 열리는 9월에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지지부진하던 비핵화 프로세스는 한층 탄력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북·미가 역지사지 심정으로 문제를 원만히 풀기 바란다”며 “남·북·미 3자 사이에 종전선언을 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는 만큼 정부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북핵 문제는 수십년 동안 해결되지 않던 도전이었다”며 “몇 시간 만에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건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에서의 약속이 진전을 이뤄낼 것”이라고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 정가의 여론은 여전히 비관적이다. 코리 부커 민주당 상원의원은 11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나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더 이상 북핵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이었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 안보보좌관을 지낸 콜린 칼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비인내’로 성급한 북·미 회담을 했기 때문에 북핵 문제가 더욱 꼬이게 됐다고 주장했다.
권지혜 이상헌 조성은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