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과 관련해 “소상공인 부담 가중의 경우 소상공인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함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편의점 등 6개의 가맹본부를 대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필수품목 구입을 강제하는 불공정행위를 들여다본다. 원·하청 및 본사·가맹점 간 불공정을 바로잡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태풍의 핵’인 김 장관을 지난 12일 서울 중구에 있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장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고용부, 그중에서도 김 장관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 노동시장 개혁의 선봉에 서 있다.
김 장관은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증발’을 유발했다는 지적에 대해 “그것만으로는 최근 고용 동향을 설명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자동차·조선 등 제조업의 구조조정,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 감소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자리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강조했다. 김 장관은 “지난달 기준으로 임시·일용직이 24만명 줄어든 반면 상용직이 36만명 늘었다”며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면서 노동 환경이 좋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김 장관은 주 52시간 근무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가 연말쯤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그는 “고용부에서 300인 이상 사업장 3627곳을 전수조사했더니 9000명을 이미 채용했고, 2만1000명 선발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한국노동연구원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14만∼18만명 정도의 신규 고용 수요가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고 설명했다.
1시간30분가량 이어진 인터뷰 내내 김 장관은 큰 키만큼이나 시원한 말투로 질문에 답했다.
-고용지표가 나빠지면서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거론되고 있다. 동의하나.
“우리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소득 양극화다.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전체 노동자의 23.5%에 이른다. 이 비중을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이해한다. 다만 영세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일자리 안정자금이라는 지원책을 마련했지만 아주 영세한 사업장까지 미치지 못한 점이 있다. 일자리 안정자금을 잘 집행하고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 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기업·청년 지원 정책에도 고용이 늘지 않으면서 최저임금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자동차·조선 등의 산업 구조조정으로 제조업 취업자가 12만명 줄었다. 올해 들어 생산가능인구가 전년 동기 대비 8만명이나 감소하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그 수위는 그리 크지 않다고 본다.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
-민간에서 고용을 늘리려면 ‘고용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뿐만 아니라 근로자도 단시간 근로를 원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다만 기업이 원하는 고용 유연성을 이루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이게 지켜지지 않으니 풀타임으로 일해야 생계비를 벌 수 있고 사회 보장을 받을 수 있으니 단시간 근로를 택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긴다. 앞으로 시간제 근로자도 사회보장보험 가입 등 모든 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청년층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도 고용 둔화에 한몫한다. 대책이 없나.
“지난달 청년층의 고용률은 전년 동기 대비 1.0% 포인트 늘었고 실업률은 1.4% 포인트 줄었다. 하지만 체감실업률이 여전히 높다. 향후 3∼5년은 에코세대(베이비붐세대의 자녀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 때문에 고용 사정이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지난 3월 발표한 청년 일자리 대책을 충실히 실행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기업이 청년을 1명 더 고용하면 지원하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의 경우 지난달에만 신규 신청이 1만9000여명이었다. 하루 평균 1560명이 신청한 셈이다. 올해 1∼5월 평균과 비교해 10배 가까이 늘었다. 다만 민간 일자리 창출이나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도 추진하겠다.”
-청년층이 중소기업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임금 체불이다. 해법이 없나.
“무엇보다 ‘임금은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는 관행을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 국가가 체불임금을 우선 지급하는 방향으로 체당금 제도를 개편할 계획이다. 체당금을 수령하는 시점을 현행 7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하겠다. 체당금 상한액 인상도 추진하겠다.”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나.
“독일의 연간 근로시간은 1300시간으로 한국(2050시간)보다 750시간 적다. 독일의 노동생산성은 59.8달러로 한국(33.1달러)보다 배 가까이 높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근로자들은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의욕이 늘어난다. 이는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 근로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달 1일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한 이후 10일간 영화 관객 수가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32%가량 늘었다고 한다. 장시간 노동이 관행처럼 굳어진 기업은 컨설팅이 필요하다. 고용부에서 올해 650곳 사업장의 컨설팅을 지원할 계획이다.”
-오전 7시 출근해 컴퓨터는 오전 9시에 켜라는 등 ‘작업 준비시간 꼼수’를 부리는 기업이 있다.
“SNS가 잘돼 있다. 고용부 홈페이지에서도 익명 제보가 가능하다. 사업주가 꼼수를 부리려고 해도 근로자들이 익명 제보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제보가 들어오면 지도·감독을 실시할 것이다. 계도기간 6개월 두는 것을 오해하는데, 계도기간은 근로시간 단축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조치다. 근로시간 위반이 확인되더라도 교대제 개편, 인력 충원 등이 필요하면 최장 6개월의 시정 기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취임 1년이 다가온다. 소회와 앞으로 강조하고 싶은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변화가 가장 많았던 곳이 노동시장이다. 문재인정부 집권 기간이 노동 분야 개혁의 ‘골든타임’이다. 아쉬움도, 서운함도, 부족함도 있지만 변화의 과정이다. 또 문 대통령은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 비준을 강조한다. 국내 노동법을 국제 기준에 맞추는 작업이다. 국회에 관련 의원 입법안이 많이 올라가 있다. 이게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목표 중 하나다.”
▒ 김영주 장관은
농구선수 출신, 노동운동 인연 ‘3선 의원’ 이색 이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운동선수, 노조 부위원장, 국회의원, 장관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쌓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 농구선수로 활약했고 당시 명문 실업팀이던 서울신탁은행에 입사하며 사회에 발을 디뎠다. 3년간 선수생활을 하다 은퇴를 선언하고 은행원의 길을 택했다. 전국금융노조 지부장으로 노동운동과 인연을 맺었고, 여성 최초의 금융노조 상임부위원장에 당선되면서 노동현장을 누볐다. 17대 국회에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입문하며 정계에 진출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등을 지냈다. 개혁 성향이면서 동시에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63)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과 △서강대 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 △17·19·20대 국회의원 △19대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 △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대담=김찬희 경제부장
정리=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