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샴푸를 깜박했어.” “다음번에 가져오자. 춥잖아.” 두 남자의 대화가 심상찮다. 언뜻 어린 아들과 아버지로 보인다. 쌀쌀한 겨울날, 슈퍼마켓에서 훔친 물건으로 그득 채운 가방을 둘러메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란히 귀가하는 길이다. 남자가 망을 볼 때 아이가 물건을 슬쩍하는 것이 이들의 ‘좀도둑질’ 노하우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 오사무(릴리 프랭키)는 어쩌다 함께 살게 된 소년 쇼타(조 카이리)를 친아들처럼 아낀다. 집에는 세 식구가 더 있다. 연금을 타 살림에 보탬을 주는 할머니(기키 키린)와 세탁공장 비정규직 근로자 노부요(안도 사쿠라),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그의 이복동생 아키(마츠오카 마유)까지. 이들의 성(姓)은 모두 ‘시바타’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가족인데, 이들은 사실 ‘진짜 가족’이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소외되고 외로웠던 이들이 만나 어찌어찌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것이다. 오사무와 쇼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다섯 살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까지 이 집에 데려온다. 친부모를 찾아주려 했으나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그를 차마 돌려보내지 못한다.
‘피’로 이어져 있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가족. 이들의 표정에서 결핍은 찾아볼 수 없다. 넉넉지 않은 형편 따윈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을 짓누르던 마음의 허기가 완전히 채워졌으니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건 그렇게나 강력한 힘이 된다. 진심을 나눈 이들의 관계만큼은 결코 ‘가짜’라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조금은 특별한 이들의 동거를 통해 영화 ‘어느 가족’은 묻는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란 무엇이냐고.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간 선보여 온 가족영화들과는 분명 결이 다르다. “지난 10년 동안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온 모든 것들을 담은 영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정적이고도 세밀한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도 오롯이 빛을 발한다. 단조롭게 흐르는 듯 보이지만 순간순간 큰 울림이 밀려든다. 특히 후반부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안도 사쿠라의 클로즈업 샷은 굉장하다. 그 감정의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개봉은 오는 26일. 121분. 15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