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보물 창고’가 열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7일 배기동 관장 취임 1주년을 맞아 수장고를 언론에 공개했다. 2005년 용산시대가 열린 이래 언론에 촬영을 허용한 것은 처음이다. 평소에도 관장조차 2인 1조로 입실해야 하는 등 철저한 보안과 위생이 요구되는 곳이다.
구석기 빗살무늬 토기부터 통일신라 금관, 조선시대 김홍도 풍속도까지 국보·보물을 포함한 유물 41만여점이 항온·항습 등 최첨단 시설을 갖춘 22곳 수장고(총면적 1만2680㎡)에 도자기, 금속 등 재질별로 보관돼 있다.
박진우 유물관리부장이 비밀의 문을 열어준 곳은 도자기를 수납 중인 3수장고. 20㎝ 두께의 육중한 철문을 지나 9개의 보안장치를 풀고서야 입실할 수 있었다. 6m 높이 천장의 넓은 공간에 미색 원목 격납장이 열과 오를 맞춰 도열해 있었다. 반도체 공장처럼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래도 도자기는 성질이 예민하지 않아 습도를 50% 내외로 맞추면 됩니다. 종이는 60%까지는 맞춰야 합니다. 마르면 바스러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장식장처럼 구분된 칸칸마다 청자 백자 분청자 등이 분류표가 붙여진 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시대별·기종별이 아니라 들어온 순서대로 수납된다. “헷갈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 부장은 “데이터베이스화돼 걱정할 게 없다”며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분청사기인화문접시’에 붙여진 유물번호 ‘덕 6446’을 검색했더니 ‘3수장고 206장 3단’이라고 정확한 위치가 떴다.
유물이 점점 늘어나 현재 전체 수장고의 80%가 채워진 상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수장고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2년에 걸쳐 4개 수장고를 복층화한다는 계획이다.
수장고와 함께 ‘문화재 종합병원’ 격인 보존과학실도 공개됐다. 단연 주목을 끈 것은 X선 단층촬영기(CT)였다. 지난해 17억원을 주고 구매한 독일 제품으로 올해부터 본격 가동하고 있다.
“이 CT는 X레이로는 볼 수 없는 3차원 진단이 가능합니다.”
보존과학부 이영범 학예사가 병원 전문의처럼 CT가 촬영한 조선백자 영상을 모니터로 보여주며 설명했다. 보물 240호인 백자투각모란당초문항아리가 진단대에 올랐는데, 내호(內壺·내항아리)와 외호(外壺·외항아리)의 이중구조가 확연히 드러났다. 유혜선 보존관리부장은 “금이 간 부분뿐 아니라 유물 안에 죽어 있는 벌레까지 확인된 적이 있다”며 “예방의학이 중요하듯, CT로 문화재가 아프기 전에 예방 보존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을 꼭꼭 숨겨두지만은 않는다. 석사 과정 이상의 연구자들이 신청할 경우 살펴볼 수 있게 열람실도 운영 중이다. 배기동 관장은 이날 “미래를 대비하고자 소장품 수집 범위를 현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라며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결한 바둑판 등 현대 역사자료, 전통을 계승한 현대 예술품도 수집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