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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밤의 한복판… 우주의 멜로디를 듣는다

마우나케아는 약 5000년 전에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휴화산이다.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은 저곳에서 밤하늘을 관측한 천문학자가 들려주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마우나케아 천문대를 이렇게 묘사한다. “화산 지형의 새까만 색깔과 대조를 이루는, 순백의 웅장한 돔들은 그 아름다움과 시정에 깊이 빠져들게 할 만큼 인상적이다. 지붕에 칠해진 이 흰색 페인트는 햇빛을 반사하여 태양이 내뿜는 열기로부터 망원경을 보호해준다.” 파우제 제공




밤은 왜 캄캄한 걸까요. 철부지 아이들이나 묻는 유치한 질문처럼 들리겠지만, 이 물음은 오랫동안 많은 석학들을 괴롭힌 난제였습니다. 하늘엔 무수히 많은 별이 있고, 별은 저마다 별빛을 띠니 세상은 밤에도 환해야 하는데 왜 밤은 어두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거죠.

밤이 캄캄한 이유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우주가 넓어서입니다. 멀리 있는 별의 빛이 아직도 지구에 도착하지 못했으니, 그리고 그런 별빛이 너무 많으니 밤이 캄캄할 수밖에요.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에는 이렇듯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여름밤의 은하수처럼 펼쳐집니다. 마우나케아는 미국 하와이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높이가 자그마치 해발 4207m나 됩니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천문대가 있어서입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우뚝 솟은 이 산에는 우주의 질서를 확인하려는 천문학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밤이면 이곳 천문대에서는 망원경 13개가 하늘을 향해 열린다고 합니다.

책을 펴낸 트린 주안 투안(60)은 세계적인 천문학자입니다. 베트남 출신이고, 현재는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우나케아를 소개한 뒤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밤, 모든 망원경이 우주의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열릴 것이다. 이 빛 덕분에 우주와 이야기를 나누며 연결될 수 있으리라. 나는 빛 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우주의 비밀스러운 멜로디를 구성하는 음표들을 찾아 그 멜로디를 재구성해내기 위해 애쓸 것이다.”

저자는 경이로운 우주의 질서를 문학적인 필치로 그려냅니다.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적 사유까지 곁들이는데, 그 유명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이 어떤 작품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밤은 숭고하다

임마누엘 칸트는 “밤은 숭고하고 낮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밤이 숭고한 이유는 “그 어둠이 우리의 감각을 자극해 우리를 우주와 연결해주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의 문장가들은 저마다 밤을 예찬하는 작품을 발표하곤 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만 하더라도 ‘밤에 드리는 시’를 통해 이렇게 노래했죠. “밤이 가지고 오는 것을/ 조용히 맞아들이는 네 모습을 보여주어라/ 네 몸을 아주 밤에 맡기면/ 비로소 밤이 너를 알아보리라.”

저자는 이슥해진 밤의 한복판에 앉아서 우주가 얼마나 광막한 공간인지 들려줍니다. 독자들은 기함할 정도로 우주가 넓고 깊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겁니다. 예컨대 지금 당장 로켓을 타고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켄타우리에 가려면 4만년이 걸립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 이 순간 하늘 위에서 이글거리는, 우리가 당장 볼 수 있는 태양도 8분 전의 태양입니다. 프록시마 켄타우리는 지구에서 4.3광년 떨어져 있으니 망원경으로 이 별을 본다면 그건 4.3년 전의 프록시마 켄타우리를 보는 게 됩니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250만년 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쉽게 말하자면 안드로메다 은하의 빛은 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 오지를 성큼성큼 걷고 있을 때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들은 제멋대로 우주에 퍼져 있는 게 아닙니다. 중력의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기고, 이런 힘은 별들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은하를 만듭니다. 은하는 모여 은하단을 이루는데 은하단은 곧 별들의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은하단이 결합하면 수만 개의 은하를 품은 초은하단이 완성됩니다. 초은하단이 모이면 수억 광년에 걸쳐 펼쳐지는 거대한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저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은하는 우리가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밤의 어둠 속에서 환하고 거대한 직물을 짠다. …초은하단은 이 직물의 ‘조직’을, 별들이 밀집된 은하는 ‘매듭’을, 텅 빈 내부는 ‘(바늘)코’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우주라는 거대한 직물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우리 삶에서 때로는 엄청나게 중요한 자질구레한 일상사가 너무 하찮고 보잘것없이 느껴진다. 빛나는 별들로 가득한 이 하늘 건축은 우리에게 더 큰 비전을 가지라고 속삭인다.”

자간과 행간 사이에서 서성이다 보면 인간이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되새기게 됩니다. 어쩌면 인간이란 구우일모(九牛一毛)나 창해일속(滄海一粟) 같은 사자성어로도 설명이 안 될 만큼 미미한 존재겠죠. 우리는 이토록 자명한 진실을 마주하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이로운 우주의 메커니즘

우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가 영원불멸의 공간일 거라고 넘겨짚곤 합니다. 하지만 우주는 비영속적인 공간입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소란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별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인간의 삶이 매우 짧기 때문”입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은은하게 펼쳐지는 밤하늘의 별자리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묘한 감흥에 빠지게 됩니다. 경이롭고 신비로운 우주의 진실을 귀띔해주는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가령 북극성은 어떤 별일까요. 북극성은 오랫동안 많은 여행자에게 나침반 역할을 했습니다. 밤하늘의 광점(光點) 가운데 움직이지 않는 지점처럼 여겨졌으니까요. 사람들은 북극성을 보면서 방향을 가늠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 별은 영원히 탐험자의 나침반이 돼줄까요. 정답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북극성이 한곳에 붙박인 것처럼 보이는 건 지구의 축이 북극성을 향하고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태양과 달과 지구가 주고받는 중력 탓에 지구의 축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흔들리고 있습니다(천문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세차운동(歲差運動)’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언젠가는 북극성도 지금과는 다른 자리에 위치하게 될 겁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는 작품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파도는 지구와 달의 일입니다. 파도를 만드는 게 지구와 달이 주고받는 인력과 척력 때문이니까요. 달이 없다면 아이가 백사장에 일껏 쌓은 모래성이 파도에 부서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달이 있어서 벌어지는 일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지구와 달이 주고받는 힘은 밀물과 썰물을 만듭니다. 지각과 바다가 계속 마찰하게 되니 지구의 회전 에너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면 지구의 하루는 길어지게 되겠죠. 3억500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봅시다. 당시 지구의 하루는 22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의 길이는 갈수록 길어졌고, 앞으로 50억년이 흐르면 지구의 하루는 30일이 될 겁니다. 물론 이건 지구가 그때까지 사라지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겠죠.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주의 기묘한 메커니즘을 확인하게 될 겁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 “인간과 자연, 우주의 관계가 상호의존과 비영속성이라는 불교 개념들로 수렴된다는 과정을 ‘밤’이라는 여정을 통해 전하겠다”고 썼습니다. 크리스천 독자라면 이 대목이 껄끄럽게 여겨지겠지만 종교색을 띤 부분은 거의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단언컨대 휴가지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여름밤의 추억을 만들게 될 겁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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