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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언니와 발달장애인 동생의 ‘세상 속 400일의 기록’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차별과 학대가 가장 먼저 일어나는 공간은 불행하게도 가정이다. 저자의 집도 다르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발달장애를 가진 여동생을 가리키며 “저것 죽이고 나도 죽으련다”라고 했다. 학교 친구들은 “너네 동생 머리가 이상한 거지”라고 물었다. 지친 부모는 저자가 중학생이 되던 해, 열세 살 동생을 장애인 수용시설로 보냈다.

‘어른이 되면’은 그렇게 18년 동안 시설에서 살았던 동생을 언니가 다시 데려오면서 시작된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유튜버인 저자 장혜영씨가 발달장애인인 동생 혜정씨와 보낸 시설 밖 400일의 기록이다. 자매는 먼저 원활한 적응을 위해 공공기관에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신청한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이다.

공공기관의 심사자는 당사자인 동생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고 신청자인 언니에게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캐묻는다. 그래도 자매는 꿋꿋하게 장애인 야학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듣고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언니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음악 과외 선생님을 소개하고 동생은 공연을 준비한다. 조촐하지만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다큐멘터리까지 완성된다.

제목 ‘어른이 되면’은 동생 혜정씨의 입에서 나왔다. 무언가 할 수 없을 때 혜정씨는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1년여 시설 밖 생활 끝에 그는 더 이상 “어른이 되면”이란 말을 하지 않게 됐다. 언니와 함께 지내며 하고 싶은 것을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자주 묻는 “한국에는 장애인이 없냐”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격리되고 소외돼 있는지를 자매의 일상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나면 저자처럼 단 한 명의 장애인도 격리당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어렴풋이 그려보게 된다.

강주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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