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답’이란 출판사의 소개 글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든다면 얼마간 배반당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1993년 등단한 중견 소설가 김경욱(47)의 열다섯 번째 소설 ‘거울 보는 남자’(현대문학)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낭만적인 연애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소설 속 사랑에 대해 들었다.
“자주 접하는 사랑의 서사엔 제가 별로 관심이 없어요. 사랑에 빠져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끝나는 그런 동화의 세계는 하나도 안 궁금해요. 저의 궁금함은 ‘두 사람이 과연 진짜 행복했을까’에 있어요. 이 소설이 누구에게나 친숙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것도 사랑의 동화 그 이후를 담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는 이와 비슷한 관점으로 ‘동화처럼’(2010)을 쓰기도 했다. 신작은 지난해 여름, 한 지인이 그에게 미국 시애틀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를 보내주면서 시작됐다. 그 기사는 죽은 남편의 얼굴을 이식한 남자와 편지를 주고받은 여자 얘기였다. ‘거울 보는 남자’ 속 여주인공은 남편의 첫 기일, 공원묘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난다.
놀랍게도 그 남자는 남편의 얼굴을 이식받은 사람이었다. 기증자의 유족과 수혜자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묘하게 끌리고 기이한 만남을 지속한다. 김경욱은 대개 기사나 사료, 사회 현상 등을 보다가 호기심이 발동하면 소설적 상상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가 외부에서 소재를 끌어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영민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장국영이 죽었다고?’ ‘99%’ ‘위험한 독서’ ‘천국의 문’으로 국내 4대 문학상(이상·현대·동인·한국일보)을 다 받은 것에 비해 일반 독자에게 지명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궁금함이 없으면 소설을 못 써요. 제게 궁금함이 있으니까 소설을 쓰면서 뭔가 묻게 되는데 그런 질문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거 같아요. ‘과연 그런가’ 하고 딴죽을 거니까.”
어쩌면 그의 소설은 이런 질문에 대한 일종의 긴 답안일지도 모른다. 신작에서 던진 질문이 ‘과연 사랑이 가능한가’라면 그 답은 무엇일까. “모두 사랑에 실패한 걸로 봐야겠지요. 아내는 남편의 얼굴을 가진 남자에게서 남편의 사랑을 원했고, 남자는 그 남편이 되려고 애썼어요. 죽은 남편은 결혼 생활 내내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가면을 쓰고 살았죠. 셋 다 사랑의 허상을 좇았어요.”
제목의 의미도 이 답으로 해석된다. 등장인물은 거울 앞에 서서 자기가 보고 싶은 이미지인 ‘허상’을 좇는다는 것이다. 추리적 기법을 도입한 그의 소설은 각자가 한 사랑의 정면과 이면을 상당히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그럼 진정한 내 모습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의 진짜 모습은 마주하고 있는 타인의 눈동자에 맺힌 거예요.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볼 때 나를 알 수 있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 의외의 답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이 타인에게서 자기가 원하는 허상을 찾다 사랑에 실패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같은 얘기란 걸 알 수 있다.
그는 2006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여름방학 동안엔 소설을 읽으며 글을 쓸 예정이다. “글을 쓰면 마음의 평화가 와요. 계속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해요.” 가르치는 것은 어떠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 가르치지 않아요. 학생들의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배워요.”
언젠가 어느 문인이 그에 대해 겸손하다고 평했던 게 떠올랐다. 그는 “전 타고난 재주가 있다기보다는 노력해서 알게 된 것을 쓰는 사람이에요. 제가 뛰어나지 않으니까 사실 겸손할 거리도 없죠”라고 했다. 그의 소설이 애써 알게 된 것을 엮은 것이란 걸 듣고 보니 소설의 주제의식이 더 확고하게 다가왔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