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물질이라고 하면 원전 피폭, 발암, 유전자 변형 등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생각나지만 의외로 유익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중 하나가 화재경보기다. 화재경보기로는 주로 연기 감지 경보기가 쓰이는데, 여기에 방사선 물질인 아메리슘이 사용된다. 원자번호 95번인 아메리슘(Am)은 은백색 금속 물질로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공 원소다. 원자력 발전 후 폐연료봉에는 원자량 241인 플루토늄이 12% 정도 존재한다. 이 플루토늄을 정제한 뒤 베타 붕괴라는 핵분열 과정을 거치면 인공적으로 아메리슘이 만들어진다. 아메리슘은 넵투늄이라는 물질로 붕괴되는 과정에서 헬륨핵 방사선인 알파선이 방출되는데, 이 반응의 반감기는 432년이다. 수백년 동안 알파선을 안정되게 방출하여, 아메리슘은 과학계와 산업계에서 반영구적인 알파선 원으로 사용된다.
알파선은 공기와 충돌해 공기 입자를 이온화시킨다. 화재경보기 내부에는 아메리슘이 도금된 알파선 원이 있고 그 주위에 전극을 배치해 이온화된 공기에 의한 전류의 흐름을 감지한다. 만약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화재경보기 안으로 들어가면 이온화된 공기의 흐름이 막혀 전류의 변화가 생기고 화재경보기가 작동한다.
그런데 이 알파선은 라돈 침대에서 방출되는 알파선과 동일한 방사선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첫째, 화재경보기에 쓰이는 아메리슘의 양은 불과 0.0001g 정도의 미량이다. 둘째, 라돈은 기체로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으나 아메리슘은 금속 물질로 화재경보기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다. 이중 보호막으로 금도금까지 돼 있다. 셋째, 아메리슘에서 나온 알파선은 대략 10㎝ 거리 이내에서 공기를 이온화시키고 모두 사라진다. 천장에 설치된 화재경보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메리슘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원자번호가 가장 높은 물질이다. 이보다 높은 원소들은 대부분 연구용으로 입자가속기에서 일시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남영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