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회고록 ‘사실과 공포’는 묵직하다. 폭로나 눈길 끌기 차원의 새로운 사실은 많지 않지만, 북한 핵 문제부터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까지 미국의 주요 외교안보 이슈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솜씨가 최장수 정보수장을 지낸 그의 내공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테러집단 알카에다의 준동과 시리아 내전, 국제 난민 위기 등 전 세계를 휩쓰는 안보 불안을 한마디로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정성’이라고 규정한다. 이걸 촉발한 것은 정부와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라고 설명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정성이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구현됐다는 게 클래퍼의 시각이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부분은 남북 대치와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그의 조언이다. 그는 1985년부터 3년간 한미연합사령부 정보 분야 부수석보좌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그에게 북한의 남침 징후를 48시간 전에 포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가 내린 결론은 북한 지도부가 한미연합군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의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처럼 우발적인 충돌이 핵전쟁으로 비화할 위험이 있는 만큼 비무장지대에 과도하게 밀집된 병력을 대폭 줄이거나 후방으로 빼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최대 무기는 ‘개방과 정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기 전이라도 미국과 북한은 이익대표부 설치를 맞교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정보를 직접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