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서 뜨는 민화, 국립중앙박물관선 홀대

19세기에 제작된 민화 ‘화조도’ 10첩 병풍. 꽃과 괴석, 혹은 꽃과 새가 빨강 파랑 노랑의 강렬한 원색 대비를 이루며 풍요로운 색채 감각을 뽐낸다. 갤러리현대 전시에 나왔다. 갤러리현대 제공
 
18세기 후반의 ‘모란괴석도’ 병풍의 일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이 농염하게 핀 가운데 아래 괴석이 남자 모습을 하고 있어 은근히 색정을 자아낸다. 갤러리현대 전시에 나왔다. 갤러리현대 제공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시에 출품된 19세기 후반의 까치호랑이 민화. 서예박물관 제공


“민화는 무명 천재화가들 그림” 예술성 재조명 목소리 높아
유명 브랜드 구찌 “S/S 컬렉션 등장한 새는 한국 민화서 영감”
국립중앙박물관 韓 민화전 전무 “고정관념 반성해야” 지적도


“이 까치호랑이 그림(호작도) 속 호랑이 털을 표현한 기법 좀 보세요. 얼마나 심플하면서도 리드미컬한가요. 화가의 내면이 표출된 듯합니다.”

김세종(62) 평창아트 대표는 평생 모은 민화가 공개된 전시장을 둘러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 점 한 점 가리키며 “까치가 뭘 상징한다는 식의 도상학적으로만 민화를 볼 게 아니다”라며 “저는 철저히 회화적 관점에서 현대미술을 보듯 민화를 모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김세종 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8월 26일까지) 개막식에서였다. 어떤 작품들은 얼굴은 정면, 발은 측면으로 그려져 입체파가 연상되기도 했다. 단순화해 추상성이 돋보이기도 했다.

민화의 예술성이 재조명돼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민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미적 가치에 주목한 전시도 민간에서 활발하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도 우리 민화에서 영감을 얻는 등 민화 한류 가능성도 점쳐진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전통 미술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발견해야 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은 고정관념에 갇혀 민화를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민화전을 먼저 연 곳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다. 구관·신관·두가헌 등 3개 전시장을 총동원해 ‘민화, 현대를 만나다: 조선시대 꽃그림’전(8월 19일까지)을 갖고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민화 중 꽃을 주제로 한 그림과 자수 60여점을 선보인다. 민화는 19세기 들어 정통회화를 모방해 여염집 생활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을 말한다. 대부분 무명화가가 그렸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이의 그림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상상력이 더 풍부하다. 화조도는 궁중장식화로 사랑받았지만 민화 화조도의 경우 분방함과 노골성, 해학성, 동심이 두드러진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민화에는 창의적 발상, 화려하고 기품 있는 색상 등 다양한 요소가 담겨 있어 분명히 조선시대 무명 천재화가들의 그림이었다고 생각한다. 운보 김기창 화백은 민화에 심취해 그 유명한 ‘바보 산수’가 탄생했고, 김종학 화백도 화조도와 자수에 매료돼 본인 작품에 반영했다고 한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19일 “전시의 목표는 민화를 현대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화가 19세기 들어 상업이 발달하고 봉건질서가 해체되는 가운데 세속화된 욕망이 표출되며 등장한 채색화라는 것에 주목한다. 조선시대 흑백 수묵 문인화로 대표되는 유교적 관념의 세계에 맞서 채색화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를 1980년대에 등장한 컬러TV가 사회에 끼친 충격에 비유했다.

꽃과 괴석이 빨강과 파랑으로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이루는 표현주의적 성격은 문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괴석을 사람 모양으로 의인화시키는 기발함도 있다.

서예박물관 전시 제목이 ‘판타지아 조선’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화조도뿐 아니라 문자도, 산수, 동물화 등 모든 장르에 걸쳐 민화가 나왔는데, 이 모든 그림을 관통하는 것이 상상력이다. 역원근법, 다시점 구도 등은 민화가 가지는 현대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갤러리현대와 예술의전당은 앞서 2016년 서예박물관에서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전-문자도·책거리’전을 공동 개최한 바 있다. 2년 만에 다시 민화전을 선보인 것이니, ‘민화 전도사 쌍두마차’라 할 만하다. 당시 전시는 미국 뉴욕 찰스왕센터, 캔자스 스펜서미술관,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순회전을 했다. 올해 전시에 나온 작품들도 오는 10월 영국 런던 아트페어 ‘프리즈 마스터스’에서 선보인다.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는 “2018년 봄 여름 컬렉션에 등장한 새가 한국의 민화(화조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중적 인기도 높다. 유독 중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가운데 현재 민화 창작 인구는 2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지난해 봄 서울에서 제1회 민화아트페어가 열렸다.

민화 가격도 상승 추세다. 서울옥션에 따르면 2015년 1월 경매에서 호피도(虎皮圖) 8첩 병풍이 3800만원에 거래됐고, 지난해 9월 삼국지연의도 10첩 병풍이 6500만원에 낙찰됐다. 김세종 대표는 “까치호랑이 명품은 4억원에 거래된다”고 전했다.

민간의 뜨거운 관심과 달리 국공립미술관에서는 여전히 홀대받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 번도 우리 민화전을 기획한 적이 없다. 2012년 ‘길상-중국 미술에 담긴 행복의 염원’을 통해 중국 민화를 일부 다뤘을 뿐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2006년 개최된 이후 민화전이 열린 적이 없다.

정 교수는 “무명작가가 그렸다는 이유로 민화를 ‘속화(俗畵)’라며 낮춰본 문화가 있었다”며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정관념에 갇혀 새로운 해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부분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는 “민족회화의 대표주자로서 충분히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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